KBS 역사스페셜 – 월남파병, 박정희의 승부수였다 / KBS 2003.5.24 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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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발대 편성 및 임무
- 1964.07.15 제1이동외과병원 창설(서울 창동)
- 1964. 7. 18 편성일자
- 편성인원 5명(합참 군수국 차장 이훈섭 준장 외 한국군 장교 2명 및 미군 장교 2명)
- 임무 한국군 파병에 앞서 파병지역에 대한 현지 조사 및 실무 협상
- 1964.8.26 남베트남 도착 사이공(Saigon) 도착
- 1964.09.11 부산항 제3부두에서 출발(이동외과병원 및 태권도 교관단 10명)
- 1964.09.22 남베트남 사이공(Saigon) 도착
- 1964.09.28 붕따우(Vung Tau)에서 시무식
주월한국군사령부(駐越韓國軍司令部)
주 베트남한국군사령부 창설 및 파병
- 1965.08.17 주베트남한국군사령관에 채명신 소장 임명
- 1965.09.25 주베트남한국군사령부 창설(서울 필동)
- 1965.10.20 주베트남한국군사령부 겸 맹호사단 사령부 요원 94명 김포공항에서 출국하여 당일 사이공(Saigon) 도착
- 1966.08.15 주베트남한국군사령부 한국군 야전지휘소(후일 야전사령부로 개편) 냐짱(Nha Tarang)에 설치
1964년 통킹만 사건이 발생하고 미국과 북베트남 간 전쟁이 1965년에 발생하였다. 당시 미국은 한국을 포함한 25개국 우방국에 참전을 요구하였는데, 한국은 참전 요구를 승인하며 파병을 결정하게 된다. 당시 국무회의는 1965년 9월 22일 주 월남한국군사령부 설치령을 결의하였으며 주월한국군사령부는 대한민국 국방부 일반 명령 제16호에 의해 1965년 9월 25일 합동참모본부에서 창설되었다. 초대 사령관은 수도사단장인 채명신 소장이 겸임했다.
1965년 10월 20일, 사령부가 베트남 공화국 사이공에 전개하였다.
1966년 6월 1일, 수도사단으로부터 제100군수사령부 "십자성"을 배속 이전받았다. 같은 해 8월 15일, 수도사단과 제9사단을 효율적으로 작전통제하기 위해 냐짱 쩐흥다이 19번지에 야전지휘소를 창설하였다. 두 개 사단 외에도 군사정보대, 통신보안대, 민사심리전중대가 배속되었다.
1968년 6월 1일, 야전지휘소가 야전사령부로 개편되었다.
1973년 3월 7일, 베트남 공화국에서 철수하여, 같은 해 6월 30일 대구광역시에서 제3야전군으로 재편성되면서 주월한국군사령부는 공식적으로 해체되었다.
맹호부대 ()-육군 수도사단
수도사단(맹호부대) 파병
- 1965.09.15 맹호부대 파병 계획단 23명 김포공항에서 출발하여 사이공(Saigon)에 도착
- 1965.09.17 맹호부대 파병 계획단 뀌년(Quy Nhon)으로 이동
- 1965.10.03 맹호부대 제1제대로 편성된 선발대 161명이 청룡부대와 함께 부산항에서 출발
- 1965.10.07 맹호부대 제1제대로 편성된 선발대 161명 뀌년(Quy Nhon)항에 상륙한 후 맹호부대
- 1965.10.12 맹호부대 결단 및 환송식 거행(여의도 비행장)
- 1965.10.15 맹호부대 제2제대(본대)인 제1연대 부산항에서 환송행사 거행
- 1965.10.16 맹호부대 제2제대(본대)인 제1연대 부산항에서 출발
- 1965.10.20 주베트남한국군사령부 겸 맹호사단 사령부 요원 94명 김포공항에서 출국하여 당일
- 1965.10.21 맹호부대 제2제대(본대)인 제1연대 뀌년(Quy Nhon)항에 입항
- 1965.10.22 맹호부대 제2제대(본대)인 제1연대 뀌년(Quy Nhon)에 상륙
- 1965.10.26 맹호부대 제3제대인 기갑연대 부산항에서 출발
- 1965.11.01 맹호부대 제3제대인 기갑연대 뀌년(Quy Nhon)항에 도착
- 1965.11.01~03 맹호부대 잔여 병력 111명 2개 제대로 편성하여 김포공항에서 항공편으로 이동 완료
- 1965.11.06 남베트남 정부 맹호부대 사령부에서 한국군 전투부대의 파병을 환영하는 공식행사 거행
1965년 2월 비둘기부대의 베트남 파병 이후, 월남공화국 정부로부터 2차례에 걸친 전투부대 파병요청이 있었다.
이에 정부는 동년 8월 15일 제52회 임시국회 제11차 본회의에 전투부대 파병안을 상정하여 동의를 얻었으며, 수도사단을 제1진으로 선정하여, 동년 10월 12일 여의도에서 결단 및 환송식을 거행함으로써, 건국 이후 최초로 전투부대를 해외에 파병하게 되었다.
파병부대로 지정된 수도사단은 국본 일반명령(육) 제30호(1965.8.28)에 의거 부대편성에 착수하는 한편, 4주간의 교육훈련을 완료하였다. 이어서 동년 9월 15일에는 계획단이, 9월 25일에는 선발대가 출국하고, 10월 16일에는 1개 연대를 결한 본대가 부산항을 출발하여 10월 22일 베트남의 중남부 항구도시인 퀴논(Qui Nhon)에 상륙하였다. 한편 후속부대인 제26연대는 1966년 4월 6일 부산항을 출항하여 동년 4월 16일 퀴논에 상륙함으로써, 수도사단은 완전 편성된 사단편제를 갖추게 되었으며, 본격적인 작전임무를 수행하게 되었다.
수도사단은 1965년 11월 15일부로 미 제101공수사단(제101공중강습사단) 및 미 제7해병연대로부터 1,200㎢의 전술 책임지역을 인수받고, 거점을 확보하였다. 이어서 동년 10월 29일 풍손마을에서 서전을 장식한 이래 대대 및 연대규모의 작전을 실시해오다가, 1966년 3월에는 고보이 평야지역에서 최초의 사단급 규모의 작전인 ‘맹호5호 작전’을 실시하였다. 수도사단은 이 작전에서 우세한 병력과 화력을 집중 운용하여 포위망을 형성한 후, ‘토끼몰이식 작전’으로 지대 내의 적을 일망타진하였으며, 사단의 전술책임지역을 북으로 200㎢ 확장하는데 성공하여, 고보이 평야지대를 사단의 통제 하에 두게 되었다.
기갑연대 제3대대는 1966년 7월 9일 미군의 ‘폴 리비어(Paul Revere) 작전’을 지원하기 위하여 캄보디아 국경선 부근으로 이동하였으며, 미군의 통제 하에 두코를 비롯한 국경선 부근의 일대 지역에서 정찰임무를 수행하고 있었다. 두코 전투에 투입된 적의 병력은 북베트남 정규군 제88연대 제5대대 예하의 400여 명과 공병특공대 등 증원병력 300여 명으로 총 700여 명이었으며, 이들의 전사상자는 500여 명이 넘는 것으로 추산되었다. 이후 제3대대는 책임지역을 미 제3여단에 인계하고, 원대로 복귀하였다.
이 같은 두코전투를 계기로 연합군측에서는 한국군의 ‘중대전술기지’의 실효성에 대하여 반신반의하던 종전의 태도를 바꾸고, 그 타당성과 효과를 인정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미군은 중대급 전술기지의 명칭을 ‘Fire Base’라고 명명하고, 그 전술적 운용에 대한 연구개발에 착수하였다.
맹호6호 작전은 당시의 시점에서 파월 국군의 최장기, 최대규모의 작전으로 최대의 성과를 거둔 작전이었다. 특히 우기에 전개된 산악전이면서, 유난히 많은 동굴을 소탕한 전투였다. 이로써 파월 국군의 작전 기량은 연합군의 인정을 받게 되었다. 맹호6호 작전이 성공적으로 수행됨에 따라 사단은 푸캇 산악지대를 기지로 하여 출몰하던 빈딩 성 베트콩, E-2B 대대와 대소의 무장병력을 일망타진하고 지역의 안정을 도모하였다.
백마부대 ()-육군 제9사단
제9보병사단(백마부대) 파병
- 1966.08.09 백마부대 제1제대 제1진인 백마부대 파병계획단 요원 60명과 제28연대 전투단 선발대 5명 등 65명 김포공항에서 출국 냐짱(Nha Tarang) 공항 도착
- 1966.08.15 백마부대 제1제대 제2진인 제28연대 전투단 244명 냐짱(Nha Tarang)항 도착
- 1966.08.27 백마부대 환송식 거행(중앙청 광장)
- 1966.08.30 제2제대인 제28연대 본대 및 제29연대 선발대 부산항에서 출발
- 1966.09.05 제2제대인 제28연대 본대와 제29연대 선발대 냐짱(Nha Tarang)항에 도착
- 1966.09.20 제3제대인 백마부대 사단본부 및 사령부, 직할대, 포병연대, 제29연대, 제4제대 선발대 부산항에서 출발
- 1966.09.25~27 제3제대인 백마부대 사단본부 및 사령부, 직할대, 포병연대, 제29연대, 제4제대 선발대 냐짱(Nha Tarang)항 도착
- 1966.10.03 제4제대인 제30연대 부산항에서 출발
- 1966.10.08 제4제대인 제30연대 깜란(Cam Ranh)항에 상륙
미국은 베트남 사태를 해소하기 위해서 보다 획기적인 병력증원이 필요했다. 그러나 미국 내 반전여론으로 인해 추가 파병은 한계에 달하고 있었다. 그 같은 상황에서 존슨 정부는 파병된 한국군의 활약을 주시하면서 베트남의 작전환경에 한국군이 가장 적합하다는 판단을 내렸다. 이어서 베트남 전쟁의 국제전적 성격을 부각시키면서 미국 내 반전여론을 무마시키기 위한 방안 등을 고려해 한국군 전투부대의 증파를 요청했다.
그러나 한국 정부의 입장은 제4차 파병을 계기로 국가안보에 대한 미국의 공약을 보다 명확히 재확인하면서 경제적 실익을 얻어내야 할 필요가 있었다. 따라서 한국 정부는 미국의 보다 다급한 요청을 기다리는 입장이었다. 미 러스크 장관은 1965년 12월 유엔총회 참석차 미국을 방문한 이동원 외무부장관에게 한국군 전투부대 추가파병을 공식 요청했다. 그러나 이동원 장관은 제3차 파병 시 합의했던 한국군 장비현대화 등의 약속이 이행되지 않고 있는 사실을 지적하며, ‘선 약속이행, 후 증파’를 주장했다. 반면 러스크 장관은 ‘선 증파, 후 약속이행’을 주장해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미 존슨 정부는 1966년 1월 1일과 2월 22일 험프리 부통령을 특사로 파견해 한국의 안보와 지원을 약속하면서 추가파병을 요청했다. 아울러 브라운 미 대사와 이동원 외무부장관의 협상이 계속됐다. 이에 따라 브라운 대사는 협상과정에서 한국측에 약속했던 내용을 서면으로 명시한 ‘브라운각서’를 보내왔다.
미국 정부가 한국에 대한 지원을 서면으로 보장함에 따라 한국군 전투부대 추가파병은 급물살을 타게 됐다. 한편 정부는 1966년 2월 22일 남베트남 정부로부터 1개 전투사단의 추가파병을 요청하는 서한을 접수받았다. 그리고 3월 20일 국회의 의결을 거쳐 수도사단 제26연대와 제9사단의 파병을 결정했다. 그 후 파병준비를 마친 수도사단 제26연대는 4월 19일 퀴논에 상륙했다. 이어 주1은 10월 8일까지 닌호아 일대에 전개했다. 그 결과 주월 한국군은 남베트남 중부 해안의 핵심지역을 담당해 미군과 함께 베트남전쟁을 주도적으로 이끌어나가게 되었다.
백마부대 제9사단의 파병에 따라 주월 한국군사령부는 예하부대의 전투근무지원을 위해 수도사단 예하의 군수지원사령부를 모체로 주2를 창설했다. 해상수송지원을 위해 비둘기부대 예하의 해군 수송분대를 주3로 개편했으며, 근접항공지원 및 공중수송지원을 위한 주4를 창설해 각각 주월 한국군사령부 예하부대로 편입시켰다.
이에 따라 주월 한국군은 군단급 규모 제대로 확장되어 명실 공히 독자적인 작전을 수행할 수 있게 되었다. 백마부대는 닌호아 · 투이호아 · 캄란지역에서 부여된 작전임무를 수행하였다. 1966년 파월로부터 1973년 개선 때까지 대부대작전 478회, 소부대작전 21만 1,236회를 벌여 사살 1만 3,500여명, 포로 700여명, 귀순 800여명, 각종 화기노획 700여점의 전과를 거두었다.
청룡부대 ()-해병대 제2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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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해병여단(청룡부대) 창설 및 파병
- 1965.09.15 청룡부대 파병 계획단(장 정태석 대령) 10명 김포공항에서 출발하여 사이공(Saigon)에 도착
- 1965.09.18 제2해병연대를 기간으로 제2해병여단으로 개칭
- 1965.09.20 제2해병여단(청룡부대) 결단식(경북 포항)
- 1965.09.25 청룡부대 선발대 95명과 육군 군수지원사령부 선발대 172명이 김포공항에서 출발하여 냐짱(Nha Tarang)에 도착
- 1965.10.03 청룡부대 본대 부산항에서 출발
- 1965.10.08 청룡부대 본대 깜란만(Vinh Cam Ranh)에 도착
- 1965.10.09 청룡부대 본대 깜란(Cam Ranh)에 상륙
1964년 8월 ‘통킹만사건’ 이후 미국의 지상군 파병은 예상되어 있었다. 단지 그 시기가 문제일 뿐이었다. 대통령선거 등의 정치 일정에 따라 지상군 파병을 늦추고 있던 미국은 1965년 3월 8일 해병 2개 대대를 첫 번째 지상군 전투부대로 다낭에 상륙시켰다.
이어서 미 합참은 1965년 3월 20일 박정희 대통령에게 “ 베트남에서 보다 적극적인 작전을 위해 미군 2개 사단과 한국군 1개 사단의 파병이 필요하다”는 내용을 공식적으로 건의했다. 이를 계기로 한국군 전투부대파병을 위한 제안과 토의가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이에 한국군 해병 제1사단은 1965년 9월 20일 제2연대를 기간으로 하여 베트남 파병부대인 해병 제2여단(청룡부대)을 창설하였다. 청룡부대 명명의 의미는 청룡이 상징하는 가공할 만한 힘과 용기, 기백과 위용을 통하여 천하무적의 부대라는 자긍심 및 한국군 전투부대의 선봉부대로 파월하는 자부심과 공산침략을 결코 용납하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을 나타낸 것이었다.
청룡부대는 1965년 10월 3일 한국군 전투부대의 선진으로 부산을 출항하여 그 해 10월 9일 베트남의 캄란만에 상륙하였다. 그리고 언어와 풍속과 지리에 미숙함에도 불구하고 해병대의 용맹성과 한국전쟁에서 얻은 실전경험을 바탕으로 캄란과 동바틴 지역을 회복하였다. 같은 해 12월 최초의 여단급 작전인 청룡 1호 작전을 전개하면서 투이호아 지구로 이동하여 베트남의 대동맥인 1번 도로를 개척하는 한편, 월남의 3대 곡창의 하나인 투이호아 평야를 확보하여 주민들의 식량난을 해결해 주었다.
1966년 8월 추라이 지구로 이동한 뒤 1967년 2월 15일 월맹정규군의 인해전술에 의한 야간기습공격을 저지, 격멸한 제11중대의 차빈동 야간기습방어전투, 그 해 7월 월맹의 수송선을 격침시켜 1,196정의 무기를 일시에 노획한 용머리2호작전과 1개 분대의 야간매복대가 1개 중대의 베트콩을 완전 격멸시킨 태로이 매복작전 등을 감행하면서 추라이지역을 평정하였다.
1967년 12월에는 호이안지구로 이동하여 1969년 1월 275t의 쌀을 발굴한 승룡 7-21호작전, 그 해 6월 베트콩의 아성인 고노이섬을 완전 평정한 승룡 12-1호작전, 그 해 9월 월남전 사상 최초로 감행한 여단급 한미 해병 연합상륙작전인 승룡 15-1호작전, 1970년 4월 지방게릴라 대장을 포함한 간부급 38명을 생포한 황룡 2호작전, 그 해 12월 122㎜ 로켓 30문을 발굴, 노획한 황룡 10-22작전 등을 감행하면서 호이안과 서부 산악지역 일대를 평정하였다.
이와 같이 1965년 10월 베트남에 상륙한 청룡부대는 1972년 온갖 고난과 시련을 극복하면서 공산군을 섬멸하기 위한 여단급 작전 55회, 포로 715명, 귀순 590명, 용의자 체포 2,669명, 개인화기 4,055정, 공용화기 노획 293문 등 빛나는 전과를 올리고 상승무적해병의 전통을 세계에 널리 과시하는 한편, 전화로 파괴된 베트남 국토를 재건하고 상처입은 베트남국민을 치유하는 대민사업에도 많은 업적을 이룩하여 한국과 베트남 간의 유대를 공고히 하는 데 기여하였다. 청룡부대는 귀국 후 베트남전에서 얻은 실전경험과 전술교리를 바탕으로 서부전선의 전략요충지인 휴전선 일대에 배치되어 수도 서울의 방위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십자성부대(十字星 部)-제100군수사령부
제1이동외과병원 및 태권도 교관단 창설과 파병
- 1965.10 최초 군수지원사령부로 맹호부대와 함께 파병되어 뀌년(Quy Nhon)에 주둔
- 1966.06.01 군수지원사령부를 제100군수사령부(십자성부대)로 개칭
- 1966.08.20 제100군수사령부 뀌년(Quy Nhon)에서 냐짱(Nha Tarang)으로 이동 주둔
3차 월남파병 결의안의 통과로 사령부는 1965년 9월 1일 강원도 홍천군에서 군수지원사령부로 창설되었다. 이범준 준장이 첫 사령관으로 임명되었으며, 그는 19개 지원 부대(7개 기술병과)를 이끌고 수도 사단에 배속되어 1965년 11월 3일까지 베트남 공화국 중남부 뀌년에 상륙하였다.
1966년 6월 1일, 약 8천명으로 증원된 제100군수사령부로 개편하였으며, 수도 사단에서 주월한국군사령부로 배속 전환되었다. 사령부는 모든 배속 부대를 이끌고 북쪽으로 타인호아와 서쪽으로 깜라인, 남동쪽으로 냐짱으로 갈라지는 1번 국도 중간에 기지를 세우고 주둔하고 시작하였다.
1967년 10월 6일 제11항공중대가 창설되었다. 중대는 탄손누트에 U-8 1대, UH-1H 2대, 냐짱에 U-6 2대, 주월한국군사령부가 있는 사이공에 UH-1D 7대를 운용하였다.
1970년 5월 제103공병대대가 건설 사업을 위해 사이공으로 건너가 건설 지원단에 배속되었다.
1973년 2월 3일부터 병력을 철수하기 시작하여 3월 23일에 베트남을 완전히 떠났다.
주월한국군사원조단(駐越韓國軍事援助團)-비들기부대
건설지원단(비둘기부대) 창설 및 파병
- 1965.01.27 주베트남한국군사원조단을 건설지원단(비둘기부대)으로 개칭하여 경기도 현리에서 창설 (병력 : 1,984명)
- 1965.02.05 건설지원단(비둘기부대) 결단식 거행
- 1965.02.09 서울운동장에서 파월 장병 국민환송대회 개최
- 1965.02.13 선발대 부산항에서 출발
- 1965.02.24 선발대 사이공(Saigon)에 도착
- 1965.03.10 본대 인천항에서 출발
- 1965.03.16 본대 사이공(Saigon)에 도착한 후 지안(Di An)으로 이동 주둔
주월한국군사령부 예하 단급 합동 민사 및 심리전부대로, 1965년 3월 16일부터 1973년 3월 7일까지 2913일동안 베트남 공화국 사이공에 주둔했었다.
1965년 제6사단 사령부에서 "주월한국군사원조단"으로서 창설되었다. 2월 5일, 결단식을 마치고 출전하였다.
베트남 공화국 제3군단 책임 지역인 사이공에서 동북 22 km에 있는 디안에 본부를 차린 뒤, 민사와 심리전을 수행하였다.
9월 25일, 주월한국군사령부가 창설되면서, 다른 부대들과 함께 주월한국군사령부에 배속되었으며 "건설지원단"으로 개명되었다.
주둔하는 동안, 베트남 인민군의 제6, 7사단, 제84포병연대과 남베트남 민족해방전선 제165연대의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자체 경비병력을 운용하였다.
백구부대(白鷗部隊)-해군 수송전대
해군수송전대(백구부대) 창설
- 1965.07.09 백구부대 및 군사원조단 증원 요원 460명 파병
- 1966.03.15 해군수공단대를 기간으로 해군수송전대(백구부대)로 증편하고 건설지원단 배속에서 주베트남한국군사령부 예하부대로 전환
1965년 2월 14일 부산항을 출발 주월한국군사원조단 (비둘기부대) 수송 작전을 실시하였다.
1966년 3월 31일 주월한국군사원조단 (비둘기부대) 소속에서 독립부대로 편성되었다.
1973년 3월 20일, 해군 수송전대의 마지막 함정이 진해항에 도착하면서 베트남 전쟁에서의 국군 철수가 완료되었다.
제5공중기동비행단(第五空中機動飛行團)-은마부대
공군지원단(은마부대) 창설
- 1966. 10. 17 베트남 파병 한국군의 항공 수송을 전담할 공군지원단(은마부대)을 주베트남한국군사령부 예하부대로 창설(여의도 비행장)
1955년 10월, 대구에서 제5공수비행전대로 창설되었고, 1966년에 제5공수비행단으로 증편되었다.[1] 10월, 미국 공군으로부터 C-54D 스카이마스터 4대를 넘겨받아 은마부대를 창설하였다.
1967년 7월 1일, 주월한국군사령부 예하 부대에 흩어져 있던 항공수송부대를 한 곳에 모으고 C-46D 코만도 2대를 추가하여 지원부대인 "제55항공수송단"을 창설하였다. 부대는 전술항공지원대, 비행대로 편성되었다. 이듬해 1968년 10월 C-46D 1대를 추가로 배치하였다가, 1970년 5월에 운용하고 있던 모든 C-46D를 퇴역시키고 C-54D로 대채하였다.[2]
1971년 7월 1일 "제5전술공수비행단"으로 개명하였다.
1973년 3월, 은마부대가 해산하였다.(여기서 제5전술공수비행단이 해산된것이 아니라, 예하부대인 제8공수비행대대(은마부대)가 해산되었다는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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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월남 파병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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