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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나이 팔십이 넘어 지난 날을 돌이켜 본다. 많은 기억들이 사라졌지만 1965년 해병에 입대하여 1967년 제대 할때까지 2년 동안
군생활을 하면서 겪은 여러 모습들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 하고있어 더 늙기전에 내가 체험한 이야기를 진솔하게 적어 보았다.
진해와 상남에서 훈련을 마치고 포항사단에서 LST 군함을 타고 상륙훈련 한후 임진강 강변에 위치한 가금리 소대에서 근무 하였고 그후 파병되어 다낭 인근 추라이 지역에서 3대대 10중대 3소대와 대대본부에서 배치되어 실전을 치루며 일어났던 여러가지 이야기와 6중대와 3대대본부가 어떻게 허무하게 무너졌는지 현장에 있었기에 누구 보다 정확하게 말할 수있다.
세계 최강의 해병, 무적해병 , 임전무퇴 우리는 얼마나 외치고 긍지를 가지고 살아왔는가?그러나 우리에게도 좋은 장점도 있었지만 감추고 싶은 약점이 있었고이러한 실패를 교훈삼아 거듭나는 막강 해병이 탄생 하기를 바랄뿐이다.
월남전이 끝난지 50년이 넘게 세월이 흘러갔지만 내가살고 있는 인근 가든그로브 시에 많은 월남인들이 타운을 형성하고 한인들과 밀접하게 교류하고있다. 아직도 치누크 헬기가 공중에 떠다니고 있는것을 볼수있고 내 몸에 아직도 총알이 들어있고 다리가 저려 오는데 어찌 월남전의 기억이 있혀질수 있겠는가?
아직도 우리나라는 남과 북이 대치상태고 지금도 세계 도처에 전쟁이 끊이지 않고 이어져 우리를 긴장 시키고있다.
.진해와 상남 훈련소
1965년 10월, 서울역에서 기차를 타고 진해 역에 내려 해병 훈련소를 찾아갔다. 첫번째 신고식을 하고 머리를 깍고 이름모를 주사를 맞고 내무반에 들어오니 나무를 깍아 만든 몽둥이에 “어머니의 사랑 , 아버지의 사랑 “이라고 쓰여진 것들이 교관 책상 위에 놓여 있는데 분위기가 으시시하다.
군복과 내의와 단화 그리고, 쎄무워카와 팔각모와 철모, 그리고M1 소총이 지급되고 군인의 기본 정신인 절도와 규율을 익히는 제식 훈련이 시작되었다. “우향우, 좌양좌” 사회에서 사용하던 용어가 아니고 이곳에서는 “오른편돌아, 왼편돌아, 뒤로돌아 ”하며 교관의 구령에 익숙치 못한 나를 당황하게 만든다. 이어서” 앞에총 세워총 받들어총 어깨총등” 용어를 익히고 차려 경례 자세들을 할때 손놀림이 언제든지 일정 하도록 연습을 하였다.
이상 한것은 부대에서 다 똑같이 공급 하였는데 누군가 팔각모를 분실하자 없어진 모자를 찾을 방법이란 훔치는 방법이왼 없기에 동료들의 것을 훔쳐 이것이 돌고 돌아 나는 화장실 갈때도 모자를 쥐고 있었다. 또한 단화나 가벼운 것들이 없어져 골치를 썩인다.
해병에 입대하여 동작이 느리거나 한번 주의를 주웠는데도 반복하면 교관들이 육체의 고통을 주는 방법이 원산 폭격이다. 맨땅에다 머리를 대고 손을 허리 뒷짐지고 구부리고 있으면 이게 장난이 아니다. 몇분만 있어도 숨이 막혀오고 모래알이 머리에 박히기도 한다. 그리고 쪼그려 뛰기도 있는데 두손을 머리에 이고 아래위로 다리를 굽히며 반복 하는데 이 또한 육체적으로 고달프기는 마찬가지다.
그래도 엎드려서 빳따를 맞는것보단 훨씬 수월하다. 나는 매맞는건 질색이라 어떤때는 때리지 말고 기합을 달라고 타협을 ?할때도 있었다.
처음에 엉성하던 제식 훈련은 시간이 갈수록 대열이 갖추어 지고 행진하는 동안 “우리들은 대한의 바다의 용사 충무공 순국정신 가슴에 안고 태극기 휘날리며 국토 통일에 힘차게 전진하는 단군의 자손 나가자 서북으로 푸른 바다로 조국 통일 위하여 대한 해병대 …….” 군가를 불렀고 그외 “도솔산” “곤조가” 등을 힘차게 불렀지만 늘 배가고프다.
부대에서 주는 양으로는 주린 배를 채울수가 없어 돈을가진 자는PX에서 빵이나 건빵으로 해결 하지만 대부분은 그렇치가 못하여 참는것 이왼 방법이없다.
다음은 소총을 분해하여 먼지를 닦아내고 기름쳐서 다시 결합하기를 여러차례 하였고 후에는 대검을 착검하고 총검술 훈련도 받고 장애물을 통과 하고 철조망을 총을 안고 누워서 통과 하는 훈련도 받았다.
오늘은 실제 사격을 하는 날이다. M1 소총에 8발 실탄을 장전하고 그동안 교육 받은대로 영점 조준하여 사격을 하는데 빵점이다.
총을 잘쏘려면 방아쇠를 당길때 심호흡을 하고 치약을 짜듯이 살며시, 혹은 여인의 젓꼭지를 만질때 처럼 살며시 방아쇠를 당기라는 교관이 가르친 대로 하였지만 뜻대로 되지 않어 난감하고 있을때 나의 이모습을 바라보던 교관이 “너는 사격하는 자세가 좋아 총을 잘쏠것 같은데 네 총은 갈보 총인것 같다 ”며 다른 총을 가져와 건네주며 서서쏴 , 앉어서쏴, 엎드려쏴를 해보라고 한다. 실탄 8발이 타겟 중심에 다 들어가자 넌 “특등사수다” 하며 나를 치켜 세운다.
사격이 끝나자 탄피를 반납 하는데 탄피가 부족한 사람은 따로 검사를 한다. 나중에 알었지만 어떤 수병이 총알을 감추어 이것으로 자살한 경우가 있었다한다. 이렇게 제식 훈련과 사격 훈련이 끝나자 상남 훈련장으로 옮겨갔다.
상남 훈련소에서는 구보와 야간 훈련과 장거리 행군 이 계속되었다 . 그중에서도 유격 훈련인 산악 훈련을 한던중 바위를 타고 내릴때 몇차례나 미끄러져 떨어 질뻔 하였다.
한번은 진해 극장에서 영화를 관람하고 나오는데 길가에 엿장수 들이 늘어서 있다. 누군가 엿을 한웅큼 집으니 다들 몰려가 눈깜짝 할사이에 돈도 안내고 다 집어가니 엿장수는 어찌 할바를 모르고 울상이다. 부대까지 찾아와 억울함을 호소 하였는데 그후 어찌 되었는지 소식이 없다.
정부에서는 기호 품인 화랑 담배와 건빵을 정기 적으로 일정한 양을 주라고 예산을 집행 하였을 텐데 그렇치가 않고 신년 초하루에 떡국이 나온다고 다들 기대 하였지만 그릇 안에 국물만 가득하고 떡 몇개만 떠다니고 있다.
실제 수류탄 투척 훈련이 있는데 교관이 수류탄을 투척할때 여러가지 유의 사항을 설명한후 차례가 되어 안전핀을 뽑고 목표물에 힘껏 던지니 금방 터지지 않는다. 나중에 알었지만 안전핀을 뽑고 던질때 하나 “둘 셋 넷 다섯 “ 적어도 5초 정도 지나 폭팔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한번은 도강 훈련이 있어 시범을 보이는 교관이 헤엄 지는 도중에 어깨에 메고 있는 소총이 물속으로 들어갔는데 물살이 세고 깊어 찾기를 포기 한적도 있었다.
야외 훈련장 옆에는 날이 어둑 하여지면 동네 아줌마 들이 우리들의 배고픈 사정을 알고 풀빵이나 찐 고구마를 가지고 우리를 유혹한다. 돈이 없으면 런닝샤스나 빤즈등을 가져가면 날쎄게 빵과 바꾸어 준다.어느날 훈련하고 식사 하러오니 밥과 국이 땅 바닥에 놓여 있는데 바람이 불어오자 모래가 밥과 국 그릇에 들어간다. 예전 같으면 “ 이걸 어떡해 먹어” 하겠지만 여기는 군대다 불평 해봐야 빳따만 들어온다.
마지막 행군인 천자봉을 다녀오면 석달의 모든 훈련이 끝이 나는데 웬일인지 그 계획이 취소 되었고 군번이 9325468 인 나는 03 병과, 소총 소대로 배치 되었다.
포항 사단
진해에서 포항 사단으로 옮겨왔다. 연병장과 건물 사이로 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의 움직임이 눈에 들어온다 .진해 훈련소와 다르게 추레이를 들고 나아가면 밥을 담아주고 김치도 있고 밥을 더 달라면 군소리 없이 퍼준다. 식당에서 줄을 서서 배식 차례를 기다리는데 줄을 무시하고 늦게 와서 맨 앞에서 밥을 타가기에 저자들이 누군데 이리 설치니? 하니 누군가 저 검은옷 입은 자들은 제대복 이고 곧 집으로 돌아간다고 한다. “아 나는 언제 제대복을 입지?” 부럽 기만하다.
중대장이 중대원을 집합 시키고 새로 들어온 우리들을 환영 한다고 하면서 우리 중대 안에서는 이유 불문하고 개인 구타를 하지 말라고 당부한다. 그럼에도 밤이 되어 잠자기전 고참들이 나를 불러 뭔가 꼬투리를 잡으려고 한다. 누군가 내 가슴과 턱에 펀치를 날린다. 내가 얻어 맞고 끄떡을 안하자 “ 이 새끼 왜 이리 거만해!” 하며 또 때린다. 이렇한 일들이 자주는 안일어 났지만 고참들이 후배 들을 때리는 것이 무슨 전통 처럼 내려 오고 있었다.
아무 이유없이 단지 해병에 일찍 들어왔다고 사람을 괴롭히는데 나는 어찌할까?두가지 생각이 난다 .고참이 시키는 대로 고분고분 말을 듣던지 아니면 반대로 나가는 것이다. 한번은 다른 소대 앞을 지나 가는데 분대장이 LMG 총열을 가지고 빳따를 치고 무엇에 그리 화가 났는지 내무실 가운데 있는 기름 난로를 발로차 넘어져 하마터면 화재가 일어날뻔 하였다.
해병은 다른 군대와 다른점이 있다면 군함을 타고 목표 지점에 다달으면 LVT 수륙양용 장갑차를 이용하여 적진에 투입되는 것이라 할수 있겠다.
처음으로 LST 군함을 타고 샹륙 훈련하는 날짜가 잡혀졌다.총에 실탄이 없고 소리만 나는 공포탄을 휴대하고 완전무장의 차림으로 구룡포로 이동하여 91함이란 글짜가 선명한 구축함 선상으로 들어 오는데 규모가 나의 시선을 압도한다. 보이는 모든것이 신기 하기만 하다. 배 중간쯤에 LVT인 수륙 양용 장갑차가 배안에 가득하다. 1개 분대의 분대의 병력을 태우고 배에서 바다로 나와 해안으로 돌진하는 해병들만 이용 할수있는 장갑차라 하겠다.
배 안에서 할일이 없으니 배안을 여기 저기 돌아 다니며 해군 병사들의 일상을 눈 여겨 보았다 . 배를 조타하며 전방을 똑 바로 바라보고 있는 해군 병사들, 배 갑판에 여럿이서 녹이 슨 부분을 베껴내고 샌딩하고 페인팅을 하기도 하고 취사병들은 갑자기 늘어난 해병들 때문에 땀을 흘리고 있다. 배 밑을 내려와보니 커다란 엔진이 쿵쿵 소리를 내며 부드럽게 소리를 낸다.
여기서도 주식은 밥하고 국만 주는데 무언가 준비가 않되었는지 우리가 거처하는 곳까지 가져갈 마땅한 큰 그릇이 없는지라 할수없이 쫄병인 우리가 철모에 국과 밥을 담아 날르니 고참들이 앉아서 꼼짝도 안하고 앉아 있기에 세상에 어느나라 군대가 철모에 밥과 국을 담아 먹는 데가 있읍니까 높은 자에게 말좀 하세요? 내가 눈을 부라리며 말을 하자 아무도 대꾸도 못하고 조용하다.
칠흙 같은 어두움을 헤치고 배는 앞으로 나아간다. 추운 겨울이고 비바람이 세차게 불고 있는데도 조타실 앞에는 해군 두명이 밖으로 나와 어두운 바다 정면과 좌우를 꿈쩍도 안하고 응시하고 있다. 다음날 지형이 어디인지 모르는 해안 앞에 배가 정박하고 배 앞에 해치가 열리며 LVT가 해병들을 싣고 바다로 뛰어 드는데 그 육중한 무게 인데도 물속으로 들어가지 않고 출렁이는 바다 물결을 헤치고 해안 모래사장 앞에 다다르자 해치가 열리며 해병들이 교육받은 대로 질서있게 뛰어나가 해안가 바닥에 길게 엎드려 공포탄을 쏘며 적이 앞에 있다는 가정을 하고 총을 조준하며 다음 명령을 기다리고 있다. 뒤에는 있는 장갑차들도 늘어서 기관포를 쏘며 실전을 방불케 하는 훈련이 진행 되고 있다.
여기저기에 동네에 사시는 여러분들이 우리가 연습하고 있는 장면을 눈을 똥그랗게 뜨고 지켜보고 있다.
연습이라 그렇치 실전에 투입된다면 몸을 은폐할 아무것도 없으니 많은 희생자가 있겠지 하는 생각도 든다. 대열을 정돈하여 마을을 지나 논두렁을 긴 행렬이 늘어져 있다. 목표 지점에 다달으자 오늘밤 숙영 하기 위하여 텐트를 치고 잠자리를 준비하였다.
여기서도 배가 고프자 누군가 “ 오다 보니 감자 밭이 보이는데 감자사리 가자” 다들 몰려가 감자를 캐서 가지고는 왔는데 날 감자는 도저히 먹지를 못하겠다. 철모 얼룩무니 카버를 벗기고 그안에 감자를 넣고 그위에 자갈을 올리고 불을 피워 얼마동안 끓이니 감자가 먹음직 하게 익어있다.
포항 사단에서 해병에게 가장 중요한 상륙 훈련을 마치차 우리 중대는 김포 2연대 병력과 교체하기 위하여 다시 LST 군함을 타고 포항 기지를 떠나 남해안을 돌아 부산을 거쳐 다시 북상하여 서해 바다로 진입 하여 김포에 이르러 닻을 내려 상륙하여 김포 연안에 도착하자 해병 추럭들이 우리를 태우고 구나리를 거쳐 “가금리” 라는 작은 마을 앞에 위치한 소대 본분까지 태워다 준다. 오는 동안 비포장 도로에서 먼지가 어찌나 일어나는지 얼굴이 흙먼지로 다들 화장을 하고 있다.
김포 가금리 소대에서
나는 752 OP “애기봉”이 바라보이는 산 아래에 위치한 최전방 군사 분계선에 위치한 소대에 도착하여 배치 되었다. 이북에서는 대형 확성기 로부터 시도 때도 없이 “ 장백산 줄기 줄기 피어린 자욱………..”김일성 장군 군가가 크고 웅장하게 들려오고 살기 좋은 이곳으로 넘어 오라고한다. 애기봉은 이지역에서 가장 높아 성탄절에는 정상에 전구로 화려하게 장식하여 이북 에서도 잘 바라보게 하였고 많은 단체가 이곳을 방문하여 성가도 불러 언론에 많이 알려진 지점이다.
임진강과 애기봉이 접하는 지역엔 가장 자리엔 이북 아이들이 넘어올경우 지뢰에 걸리도록 곳곳에 지뢰를 설치하였는데 썰물때에는 녹이슨 지뢰가 여기 저기 나타나 우리도 근처를 지날때는 혹 발을 잘못 디디지 않을까? 조심하였다.
소대장에게 전입 신고 식을 하고 선임 수병이 해가 어둑어둑 해지자 “막걸리” 타오라고 한다. 소대에서는 막걸리 도 주나 하며 소대 본부 안으로 들어가니 막걸리는 술이 아니라 오늘의 부대 “암호” 은어였다 . 한밤중 어두울때 누군가 부딛칠때 이 암호를 말하지 못하면 총맞는다. 암호는 매일 대대 본부에서 정하여 내려오는데 가끔씩 잊어 버릴 때도 있었다.예를 들어 내가 “한강!” 하면 그쪽에서 바른 대답을 해야지 못하면 총을 발사 할수있다.
전방지역 이라 M1 소총과 실탄 두 클립과 무전기를 휴대하고 날이 어둑어둑 해지자 네 명이서 일조가 되어 들판을 지나 임지강가에 구축 되어 있는 초소로 향하였다. 우리 소대 담당 구역에 4개의 초소가 있었는데 양쪽 두군데는 비워두고 병력이 부족하여 양쪽 두군데만 담당 하고 있었다.
한사람이 두시간을 앞에 총을 하고 교대로 강과 주변을 바라보며 움직이는 무슨 물체가 있나? 혹은 이상한 무슨 소리가 들리나 귀를 기울이고 있다 . 졸면 죽는다고 고참들이 누누히 주위를 준다. 전에 북한군이 강을 건너와 초병의 목을 잘라 간적이 있다고 하고 소형 잠수정이 강을 건너 와 발견된 적도 있었다 하며 겁을준다.
새벽이 되면 철수하여 소대에서 아침을 먹고 삽을 들고 교통호를 살피며 밤에 무슨 사람 발자국이 있나? 혹은 흙이 무너져 보수 할데가 있나 점검하고 정기적으로 사격 연습을 하려고 LMG나 HMG기관총을 분해하여 이것을 메고 사격장에 가서 사격 훈련하고 돌아오면 심신이 고달프다.
여기 가금리 소대는 진해나 포항처럼 주방 시설이나 샤워 시설이 없어 초라한 생활을 하는데 겨울 에는 샤워를 할수 없고 속옷도 세탁을 못하니 이가 득실득 실하다. 속옷을 벗어 보면 어찌나 많은지 끓는 물에 삶어서 털어 입기도 하였다.
내 밑에 쫄병이 들어오기 시작한다. 이제 더이상 쫄병 신세는 면하였지만 마음 속으로 결심 한바가 있어서 나는 절대로 후임으로 들어오는 후배 들에게 구타를 하지말것, 또한 할수 있는대로 존대말을 하자 결심 하였는데 어느날 내가 후배 에게 “ 이렇게 하세요” 말하는 모습을 소대장이 보고 나에게 하는 말이 너는 ” 해병이 아니다” 하며 웃는다.
해병대에 들어와 좋은 점도 있고 배울점도 있지만 먼저 해병에 들어온 고참이라고 혹은 계급이 좀 높다고 사소한 일에 빳따를 치고 원산 폭격이나 쪼그려 뛰기를 시키는 악습은 사라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언제 부터 이런 전통이 생겼는지는 모르지만 어떤 사람은 고참한테 매맞은것이 한이 맺혔는지 “ 맞었으니 너도 한번 맞아봐라” 하는것 같다.
도도히 흐르고 있는 임진강을 바라보면 민간인들 출입이 제한 되어 있어서 인지 물고기 떼가 몰려 다니고 물이 빠진 강가에는 게들이 지천으로 기어 다니고 있다. “이것을 잡아 벙커에 들어가 불을 피워 삶어 먹자 ” 정하고 철모에 게를 넣고 끓여 놓으니 먹음직하다. 처음에는 맛이 있으나 소금도 없고 양념이 없는 게를 비린내가 나 더이상 먹지를 못하겠다.내가 이러려고 해병대에 들어왔나? 눈물이 주르르 흘러 내린다. 군대에 들어와 진해 훈련소와 사단에서 이곳 김포 여단에서 이렇게 배고픈 적이 나의 일생에 없었다.
봄철이 되어 부대 주위에서 모심기를 하고있다. 소대장은 절대로 민폐를 끼치지 말라고 말하지만 기회를 보고 있다가 낮에 모심기 일하는 분들이 새참을 먹고있다. 닦아가니 동네 분들이 밥하고 김치를 한그릇 챙겨준다. 한그릇을 후딱 먹어치자 “ 남아있는것 다 먹어도 돼요” 한다. 내 기억으로 그때 밥 여섯 그릇을 다비우고 일어서는데 얼마나 배가 부른지 일어 서지를 못하겠다. 그리고도 소대에 들어와서 저녁에 밥한그릇을 다 먹었으니 전에도 없었고 후에도 이렇게 밥을 배가 터지도록 먹은때가 가금리에서 근무 할때였다.
쫄병인 나는 선임 수병들이 반찬이 없을땐 나를 시켜 동네에 가서 김치를 얻어 오라고 시켰다. 군복위에 자켓을 입고 있어 빨간 명찰도 없고 계급장도 안보이고 바께스를 들고 있는 나의 모습을 누가 보았다면 거지 처럼 보였을 것이다. 바께스를 들고 마을집 에 들어서면 어느집이고 김치를 몇포기씩 담어준다. 많이 해봐서인지 아주 길들이 잘들어 있구나 생각이 든다. 동네를 나와 부대로 오면서 포기 김치 하나를 다 먹어 버렸다 어찌나 맛있는지……
우리 소대에 선임 하사관 김중사는 나와 경주 같은 김씨라 가까워 졌다. 지금 받는 군인 봉급으로 아내와 살기가 힘든다고 한다. 총을 잘쏘아 날라가는 새도 떨어 뜨리기 까지하는 명 사수 인데 어느날 동네 주민과 논에 벼를 심는 출입 문제로 언쟁이 있었고 급기야 주먹이 오고가는 과정에서 김 선임 하사가 옆에 놓여 있는 삽으로 휘두르다 상대방 다리를 가격하여 뼈가 부러지는 불상사가 일어났다. 그들이 헌병대에 신고하자 헌병들이 달려와 김 선임 하사를 구속 하였고 재판에 회부 된다고 하는데 그후 어찌 되었는지 소식을 모른다.
오늘도 평소와 다름없이 날이 기울자 셋이서 초소 근무 하러 총을 메고 강변에 있는 장소로 내려와 근무를 하고 아침에 일어나니 총 한자루가 안보인다. 분명히 어제 총 하자루씩 메고 왔는데 이게 어찌 된일인가? 분명 우리가 졸고 있는 사이에 소대장이나 선임 하사관이 근무 상태를 점검 하러 왔다가 졸고 있을때 총을 가져 갔구나 생각이 되었다. “ 아침부터 빳다 맞게 생겼네 ” 하며 소대 마당에 들어서니 향도가 건물 안에서 창문을 열고 하는말이 “ 야 총 한자루는 어째고 들어서느냐? 한번도 우리가 귀대할때 우리를 쳐다 보지도 않던 그가 오늘은 웬일일까? 셋이서 빠다 몇대 맞고 총을 돌려 주겠지 기다리는데 확인 하여보니 아무도 밤에 순찰 나온 사람이 없다한다.
그렇다면 이총을 누가 가져 갔을까? 전에 고참들이 얘기 한것처럼 이북 아이들이 강을 건너와 총을 가져 갔다? 말도 않되는 소리다 만약 그리되었으 면 총만 가지고 가겠느냐? 우리 셋 다 죽이고 다 가져 갔겠지….. 그렇다면 혹시 동네 주민 누군가가 와서 훔쳐갔다? 여기는 밤에 암호를 모르고 우리에게 접근 할수가 없다 불가능한 것이다. 그렇다면 누가 이런짓을 하였을까? 분명히 이곳 지리와 우리의 사정을 잘알고 있는 자일 것이다 단정을 지었다
그렇다면 우리 소대 안에 누가 이짓을 하였을까? 가장 의심이 가는 사람이 소대원의 고참인 향도라고 의심은 가나 증거가 없고 쫄병인 내가 고참한테 따지고 든다면 즉사 하게 때릴것이다. 왜 무슨 이유로 이자가 총을 가져 갔을까?..........
또 한번 불상사가 일어났는데 우리가 초소에서 근무 하는데 1분대 장이 허겁지겁 뛰어 오며 “총 좀줘 총 총!” 한다 . 1분대장은 치질이 심하여 잘걷지도 못하는데 얼마나 급했으면 벌판을 가로질러 여기 까지 뛰어 왔을까? 다들 놀라 어쩐 일이냐? 물으니 향도와 언쟁중 술에 취한 향도가 M1 소총으로 가까이서 자기를 쏘았는데 다행이 옆으로 스치고 지나 자기도 향도를 죽이 겠으니 총을 달라는 것이다.
다들 제정신이 아니라 우리는 1분대장과 함께 소대에 도착하니 향도는 소대에 있는 대원들에게 제앞되어 손을 뒤로 제치고 꽁꽁 묶어 놓았다. 얼마나 얻어 터졌는지 얼굴이 피투성이고 퉁퉁 부어있다. 총소리를 듣고 중대장이 뛰어오고 소대장과 중대장이 한참 이야기 하고 결론을 내리는데 우리 안에서 끝내고 더이상 사건을 키우지 말자 하고 향도는 중대본부로 옮겨 갔다.
진해에서 포항으로 그리고 김포의 가금리 소대 오기 전까지는 별일이 없었는데 최 전방인 이곳 소대에 와서는 김 선임 중사가 구속 되었고 ,고참인 향도가 1분대장에게 총을 쏘는 하극상이 발생 하여 침울한데 잃어버린 소총은 아직도 나타나지 않으니 이 일을 어찌할까? 하는데 생각이 떠오른다.
지난해 월남 전선에 해병 1진이 파병되었고 이어서 2진이 1진과 교체를 위하여 준비 중이라는데 나도 월남전선에 한번 지원 해볼까? 하는 생각이 들어 아무에게도 말을 않하고 서울 후암동에 위치한 해병대 사령부를 찾아갔다 .
마침 나를 상대한 해병이 서울 약수동에 살며 같이 해병에 지원한 친구가 책상에 앉아있다 나를 보며 반가히 맞이한다 “왜 여길 왔어 뭐! 월남전에 지원하고 싶다고? 야!임마 지금 해병들이 월남에서 얼마나 죽는지 알어?......남들은 그곳에 안가려고 발버둥 치는데 너는 바보냐?하며 되돌아 가란다. “나 지금 있는곳으로 가면 매 맞아 죽어! ” 자세한 이야기는 안했지만 참담한 얼굴을 하고 있는 나를 바라보던 그는 그래 네 소원 이라면 내가 보고서 올릴께” 하며 지원서에 사인을 하란다.
일주일쯤 지나 소대장이 자기 방으로 나를 부르더니 “ 너 월남전에 지원 하였니? ” 물어온다 “네” 사령부에서 특명이 내려 온것이다. 소대장은 말은 안하였어도 내가 왜 월남전에 지원한 이유를 충분히 알것 이다. 잠시후 손을 내밀더니 악수를 하면서 “살어서 돌아오라” 이렇게 말하였다. 소대원들의 배웅을 받으며 기차를 타고 다시 포항 사단에 내려와 특수 교육대에 입소 하였다.
특수 교육대
월남 참전 제 2진인 우리는 작년에 파병된 제 1진과 교대하기 위하여 특수 교육대에 입소 하였다. 대대 병력이 부대 별로 모여 들었지만 나같이 2진에 지원 하여 이곳에 온 자는 없는것 같이보인다.면회와 ,외출, 외박이 금지된 상태이고 외부와 차단이 되어있다.
처음 이곳에서 본 진풍경은 자유 배식이다 .해병에 입대하여 지금까지 보리가 섞인 밥과 콩나물 국을 먹어 왔지만 여기는 흰 쌀밥이 큰 그릇에 담겨있고 반찬도 부침과 꽁치 제육등 이것 저것 처음 보는 반찬들이 풍성하 다.항상 배가 고파 언제 한번 배불리 먹어 봤으면 하였는데 이렇게 마음껏 먹고 싶은 대로 먹으라니 금방 배가 차고 먹지를 못하겠다.
그위에 6개월치 봉급이 선 지급되고 PX에 가서 사먹고 싶으면 마음대로 사용하란다. 세상에 이런 군대가 어디있냐? 진해와 포항사단과 김포여단에서 배를 쫄쫄 굶었는데 같은 해병인데 여기는 왜 이리 다를까?.........답은 간단하다 .우리는 전장에 투입되고 언제 죽을지 모르는 신분들 이라 이렇게 대우를 잘하는 구나 느껴졌다.
밤에 초소에 나가 보초 서는 일도 없고 고참한테 들볶이지도 않고 빳따를 맞을 일도 없고 단체 기합도 없으니 이게 웬말인가? 월남전에서 죽고 사는것은 다 제 팔자고 현재 이렇게 마음 편하고 부족함이 없으니 이보다 더 좋은 곳이 있을까?
특수 교육대에서 하는 일이란 쟝글전에 대비한 훈련으로 이동하는 물체에 사격 하는 것과 만약 적과 부딛쳐 총을 사용 할수없을때 상대방을 일격에 급소를 쳐서 쓰려 트리는 방법과 극한 상황에세 먹을 물이 없을때엔 새벽에 내리는 이슬을 나무 잎에서 채취하여 마시며 먹을 것이 없을 때는 뱀이며 짐슴을 잡아 해결하고 길을 가다 방향을 잃을 때에 위치를 파악하는 독도법등 다양한 교육이 실시 되고있다.
월남전에선 이동시 자주 헬기를 타고 이동 하는데 타고 내릴때 우리는 어떻게 행동을 하여야 하는지를 1진 해병에서 보내온 경험담을 들려준다. 보통 헬기에 완전무장을 갖춘 병사7명이 탑승하고 내릴때에는 곧바로 헬기주위에 엎드려 사주 방위를 한다.
또한 부비트랩이 무엇인지 용어를 배웠고 부비트랩으로 많은 병사가 죽거나 다친다고 교육을 받았다. 적들은 사람이 다닐수 있는 길에 땅을 파고 그 밑에 대나무나 쇠 꼬챙이를 날카롭게 하여 설치하고 감쪽 같이 덮어놓아 멋모르게 여기 빠지면 큰 부상을 입도록 하고 또한 이곳저곳에 발목 지뢰를 묻어놓아 건드리면 발목이 날라 간다고 한다.
이것 말고도 정찰시 가택을 수색할때 집 문을열면 수류탄이 터지게하여 우리를 괴롭히고 고추를 좋아하는 우리의 습성을 이용하여 건드리면 폭탄이 터지도록 적들은 갖은 방법을 다하여 우리를 괴롭힌다고 한다.
또한 크레모아 지뢰가 어떻게 생겼고 그 사용법에 대하여 교육을 받았다 .손바닥만한 크기에 그 안에 쇠구슬 750개씩 들어있어 이것이 폭발하면 굉장한 위력을 발휘 한다고 한다. 가느다란 전선이 연결되어 있어 어것으로 조작을 하며 가벼워 조작 하기도 별로 어렵지 않다 생각이 되었다.
훈련중 여가 시간에는 장기 자랑이 있었고 앞으로 맹호부대와 함께 배를 타고 가는데 그들 앞에서 군가를 부르는데 군가 말고 재미있는 노래가 없을까? 대대장이 좌우를 둘러보며 말한다. 몇 사람이 나와 불렀고 나의 차례가 되어 영화 SAD MOVIE 영화 주제가 를 가지고 여기에 가사를 부쳐 부르니 다들 박수를 치며 이것으로 부산 항에서 부르자 하며 좋아들 한다. 이때부터 나의 이름대신 “쎄무워카”라고 별명이 붙여져 불리었다.
구룡포와 양포를 오가며 훈련을 받을때 어느지역인가 바닷가 모래 사장에서 쉬고 있는데 그 더운 땡볕에서 차거운 샘물이 솟아 올라와 흘러가는데 너무나 신기하다. 떠서 먹기도 하고 이것으로 세수도 하며 즐거운 시간을 갖고 부대로 돌아왔다. 이제 훈련도 끝이나고 내일이면 부산 항구로 향할 차례이다
처음보는 쟝글화와 얼룩무늬 군복 두벌을 지급 받아 한벌은 입고 부산 항구에 오니 커다란 군함이 떠있고 많은 사람들이 부두안에 가득하다. 부모와 형제 자매는 물론 여군들까지 몰려와 손을 흔들며 우리를 반기고 있다 .
맹호부대 장병과 함께 해병용사들이 도열하여 군가를 부른다 .먼저 맹호부대가 선창을 부르고 다음은 우리 차례다 “삼천만의 자랑인 대한 해병대 얼룩무늬 번쩍이며 쟝글을 간다 월남의 하늘아래 메아리치는 귀신 잡는 그 기백 총칼에 담고 붉은 무리 무찔러 자유 지키려 삼군에 앞장서서 청룡은 간다” 숫자는 맹호 부대가 많었지만 해병들은 목이 터져라 힘차게 불렀다.
이어서 쎄무워카 곤조가가 시작한다 “ 쎄무워카 해병대만 신는 워카, 육군도 못 신고 공군도 못 신고---- 그렇다고 해군은 신었다고 하지만 ---해병대 보급창에 김바이 해서 신은 것이래요---- 오 오 오 쎄무워카 해병대만 신는 워카 , 오 오 오 쎄무워카 해병대만 신는 워카-----“
다들 배에 오르자 작은 배들이 서서히 우리를 밀어낸다 배에서 던져진 오색 테이프를 서로 잡고 있는데 서서히 팽팽 하여지다 끊어진다. 우는 사람도 있고 잘다녀 오라고 손을 흔들며 큰소리로 누구 이름을 부르며 절규를 하고 있다. 이상한 감정이 일어나며 코 끝이 찡하다. 누군가 돈을 꺼내어 여군들 머리위에 던지며 “ 다가져라 ”소리도 지른다.
아버지가 면회 오셔서 월남에 가는것이 부대가 이동하여 따라 가는것으로 아시는데 그게 아니고 내가 지원하여 그곳으로 간다는 말을 차마 못하겠다. 사령부에 가서 월남전에 가고 싶다고 지원할때 담당자가 현재 많은 해병들이 죽는데 왜 그곳을 가려는냐 만류 하였는데 이렇한 나의 사정을 말씀드릴 용기가 나지 않었다. 혹시 내가 명이 짧아 그곳에서 전사 한다면 아버지가 보상금을 받으시겠지 ……이런 엉뚱한 생각도 하여보았다.
배안에 들어오니 생각 한것보다 배가 크고 여러가지 처음보는 시설을 보며 놀랐다. 화장실에 가니 처음 보는 하얀 변기가 죽 늘어서있다. 이것을 어떻게 사용하지? 다들 두리번 거린다. 어떤이는 변기 뚜껑에 올라가 일을 치루기도 한다. 또 화장지를 너도 나도 하나씩 가져가니 이곳에서 근무하는 자들이 우리의 모습을 보고 한심한지 “까뗌” 하며 고개를 흔든다.
식사 시간이다 커다란 트레이를 들고 다가가면 배식 하는 사람들이 여러가지 처음보는 음식들을 그득히 담아준다. 처음 맛보는 양식 인데 너무나 맛이 좋다.그리고 후식으로 한켠에 커다란 오렌지가 놓여있는데 음식을 다먹고 이것을 먹으니 우리가 한국에서 먹던 귤 하고는 질이 다르다 너무나 달고 맛이 있다.
음식을 먹고 나서 오렌지가 더 먹고 싶은 사람은 다시 줄을 서서 또 한번 음식을 받어서 음식은 버리고 오렌지만 먹으니 이를 목격한 해병들이 너도나도 이렇게 따라 하자 중간에 음식이 모자른 원인을 발견한 미군들은 오렌지 하나 더 달라 면 되지 왜 이런짓을 하는지 장교들에게 항의를 한다. 원인은 오렌지 하나 더달라고 영어를 못하여 일어난 해프닝이다.
식사를 하면서 숫가락이나 나이프 등을 하나씩 가져가니 재고가 떨어지자 미군들이 장교들에게 이사실을 말하고 이것은 배에서 구입 할수없으니 돌려달라고 하자 중대장이 전 해병을 집합하여 놓고” 너희들 나라 망신 시키고 있다고” 하자 다들 제자리에 같다 놓았다. 얼마 있으니 한사람당 급료로 40불씩을 달러로 지급한다. 배에 타는 순간 부터 한달치 월급을 주는것이다. 처음 보는 달러를 자세히 살펴보니 IN GOD TRUST란 글이 써있다 .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다 라는 뜻인데 돈위에 왜 이렇한 글을 써 놓았을까? 배 안에는 PX 도 있어 원하는 것을 살수도 있고 영화도 보여준다.
항해중에 몇번 퇴함 훈련을 하였는데 배가 파선 할경우 혼잡을 방지 하기 위하여 방마다 미리 정해진 라인을 따라 질서있고 신속하게 구명정을 타기 위한 훈련이다. 구명정이 배안에 승선한 인원을 태울수 있도록 설계되어 배 양편에 매달아 놓았다. 구명정을 살펴보니 배 후미에 엔진이 있고 백여명을 태울수 있는 규모로 크다. 그리고 며칠간 견딜 식량과 물과 연료와 비상 통신 시설이 비축 되어있다 .
항해를 하는 동안 배 멀미로 갑판 여기 저기에 사람들이 누워있고 해병 보다는 처음 배를 타보는 맹호부대 용사들이 대분이다. 우리는 비 무장으로 월남 작전 지역에서 무기를 지급 받는데 맹호 장병들은 칼빈 총을 휴대하고 있어 우리와 좀 다르다 생각이 든다. 푸른 바다를 헤치며 배는 앞으로 나아간다 어느 지점엔 날치라는 고기가 바다에서 뛰어올라 한참이나 날라가다 물속으로 들어가는데 여러 무리가 떼를 지어 날라 가는 모습은 장관이다.
일주일 동안 항해 하는동안 하는일이란 퇴함 훈련에 정하여진 구명정을 질서 있게 찾아가는 훈련이고 그저 먹고 자고 트럼프 놀이하고 편지쓰고 하는것이 전부다 하겠다. 여기서는 동초 서는 일도 없고 고참이 라고 누구하나 건드리는 사람도 없다. 그당시 일병 월급이 당시 200원 받았는데 배안에서 첫달 월급으로 40불을 받었으니 이것을 한화로 계산하면 만원 가까이 되는데 이게 얼마 나 많은 돈이냐?
만약 내가 2연대 가금리 에서 이렇한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다면 제대 할때까지 초라하게 임진강 둑에서 배고프고, 고생만 하다 세월 보내겠지 하는 생각이 들며 내일은 어찌되든 결단은 잘한일이다 생각 하였다.
월남 도착
일주일 정도를 항해 한후 드디어 월남의 퀴논 항에 도착 하였다. 여기는 육군 맹호부대의 작전 구역이다. 함께 배를 타고온 장병들이 줄을 지어 하선 하고있다. 서로 부대가 다르고 몆마디 말도 나누지 못한 처지 이지만 나는 마음속으로 “ 형제들이여 안녕히들 가시오 건강하게 계시다 조국에서 만납시다 ” 이렇게 기원 하였다.
퀴논 항을 출발하여 배는 해안 선을 따라 북상하여 캄란 항구에 도착 하였다. 우리 나라에서 볼수없는 야자수와 각종 열대 식물들이 검푸르게 펼져있고 한얀 모래사장이 길게 뻗어있어 한폭의 수채와 같이 경치 한번 끝내준다. 우리가 정박한 배 주위에는 바구니 처럼 둥그런 모양을 한 작은 배들이 몰려와 무언가 달라는 표정 들이다 .어떤것은 제법 커서 온식구들이 그안에서 머무는것 같이 보인다. 우리는 가지고 있는 캔디나 쿠키 등을 던져 주었고 피던 담배를 누가 던져주니 피우다 말고 옆에 있는 자식 에게 건네 준다. 이렇한 장면은 처음 보는지라 “ 저 피도 안마른 것이 담배를 피다니” 다들 혀를 차며 소리를 지른다.
문뜩 나의 7살때 모습이 생각난다. 6.25 전쟁후 장터에서 동네 아이들과 놀고 있을때 미군 찦차가 정차 하더니 서너명의 미군이 웃으며 내려와 우리의 모습을 사진 찍은후 껌, 젤리, 초코렛, 쿠기 등을 주었는데 그 맛이 꿀맛이다. 어떤 때는 미군을 보면 쫓아가 “ 김미 쪼꼬 렛도” 하면 말을 알아듣고 웃으며 가지고 있는것들을 나누어 주던 기억이 생각난다.지금 이아이들과 나의 어릴때 그때와 무엇이 다를까?
이윽고 우리는 대기중인 트럭을 타고 비행장으로 향하는 동안 길 양편에 영어로 표기된 각종 군수 물자가 산같이 쌓여있다. “ 야 미국의 국력이 대단 하구나 ?” 다들 감탄을 하고있다. 활주로에는 잿빛의 커다란 군용기가 줄을 지어 우리를 태우려고 기다리고 있다. 처음 비행기를 타보는 순간이다. 비행기 안이 커다랗고 넓으며 더운 날씨 인데도 찬바람이 씽씽 나오고 있어 우리를 즐겁게 한다.
잠시후 활주로를 빠르게 달리더니 그 육중한 몸체가 하늘로 떠오르는데 스릴 만점이다. 얼마동안 비행 하더니 푸른 바다와 길게 뻗은 해안가 모래 사장이 보이는 곳에 착륙을 하는데 바로 투이호와 라는 곳이다. 투이호와는 우리 나라 대천 해수욕장 처럼 모래 사장이 펼쳐있고 뒷쪽에는 열대 산림이 평풍처럼 둘러싸 장관을 이루며 검푸른 바다가 앞쪽에 넘실 거리고 있어 캄란에서 보았든 멋진 장면을 연상케 한다.
또한 이곳은 청룡 1진이 이곳에 자리를 잡고 주둔하여 그만치 위험이 덜하고 안전하다고 한다. 우리가 머물고 있는 지역에 대형 텐트가 쳐있고 인근에는 미 해병대가 머물고 있는 모습들이 보인다.
그곳에 도착하니 사진 반원이 한사람 씩 사진을 촬영하고 군번이 새겨진 메달을 가는 줄에 매달아 목에 걸어주는데 이것은 어쩌면 영정 사진이 될지도 모른다 하는 생각이 들고 메달은 싸우다 죽을때 증표로 쓸지도 모른다 하는 생각도 해보았다.
처음으로 C 레이숀 군용 음식이 제공 되는데 한 박스에 12개가 들어있고 4일을 먹을수 있는 양이다. 이것도 처음 대하는 것이라 어떻게 캔을 오픈 하는지를 몰랐고 그 안에 내용물이 무엇인지를 영어가 미숙하니 별별 헤프닝이 벌어진다. 캔을 들어서 묵직하면 이것이 메인 후드다. 고기, 닭,칠면조등이 매끼마다 다르게 들어 있고 잼이나 빵,쿠키등이 다양하게 들어있어 웬만하면 다들 먹지를 못한다. 후식으로 맥주와 담배가 따라온다. 맥주와 양담배도 다 처음 으로 먹어보는데 우리가 피던 화랑담배 보다 맛이 순하고 휠타가 있어서인지 더 고급스럽다.
우리가 머물고 있는 텐트안에 어디서 나타났는지 팔뚝만하고 얼룩달룩 색상의 커다란 도마뱀이 천정위나 벽으로 슬슬 기어다녀 징그러워 죽이려 하니 1진 해병들이 뭐 먹을 거 있나 들어오는데 사람을 해치지 않으니 그냥 놔두라 한다.
마실 물이 떨어져 미 해병들이 위치한 곳에서 정수한 물을 공급하고 있어 물통을 메고 그곳에 가니 영어도 못하고 떠들고 있는 우리 모습이 못마땅한지 미군들의 표정들이 밝지가 않고 친절 하지가 않어 다음 날에는 수류탄을 두개씩 탄띠에 차고 그곳에 가니 미 해병들이 우리를 보고 ” 제네들 물뜨러 오는데 수류탄을 왜 가지고 있지 ? 락 마린이라고 하더니 ……. ” 말하며 우리를 피한다.
그곳에 있는 동안 월남 인들의 사는 모습을 보게 되었는데 그들은 신체가 우리보다 작고 갸냘프다 생각 되었고 우리와 사는 모습이 비슷한 점도 있고 동 떨어진 모습도 보았다. 예로 장례 하는 모습을 보았는데 시신을 해안가 모래 위에 안치하고 며칠있다 모래를 파고 그 안에 시신을 놓고 있는것같다. 또 한켠 에서 모를 심고 있는 모습을 지켜 보았는데 우리 나라 농촌에서 보았든 장면과 흡사하다. 좀 다른점은 그들은 검정 옷을 대부분 입고 있고 삼각형 모양의 모자를 쓰고 물건을 운반할때 어깨를 막대기로 이용하여 잘 움직인다 . 우리나라의 지게라고 할까? 그리고 월남은 기후가 좋고 비가 많이와 일년에 삼모작도 할수 있다고 고참 1진 해병이 귀뜸을 한다.
그리고 보통 때는 우리 처럼 흰옷을 즐겨 입는것 같고 여인네 들은 아오자이 라는 옷을 입고 있는데 붉은색 나는 열매를 씹고 있어 이것 때문인지 입술 주위가 지저분하게 보인다.
그들이 거주 하는 집에도 가보았는데 화장실이 안보이고 이상한 냄새가 나는데 이것은 우리나라 새우젓 처럼 민물고기를 이용하여 젓갈을 담그는데 이때 비린내가 난다고 한다. 푸슬 푸슬 끊기없는 밥에다 새우젓을 올린후 긴 젓가락을 가지고 후딱 먹어친다.
또 쌀을 이용하여 이것으로 똘띠에 처럼 만들어 그 안에 여러 가지를 넣고 돌돌말어 먹는데 우리 나라의 김밥과 비슷 하다고 할까?
가끔 아오자이 입은 여인네들이 길가에서 쭈그리고 앉아 일을 치루는데 우리를 보고도 아무렇치 않게 생각하며 우리를 보면 잘웃고 손을 흔든다. 이렇한 장면도 우리 나라에서 볼수없는 모습들이다.
놀고 먹고 하는것도 이제 끝이 다 .나의 직책은 3대대 10중대 3소대 1분대 BAR 사수로 정해졌다. 그동안 만져 보았던 M1 소총이 아니고 우리가 부르는 “ 비아루”라는 총이다. M1소총은 여덟발 들어가는 탄창을 쓰고 방아쇠를 당길때마다 한발씩 총알이 나가는데 비에알 소총은 스무발이 탄창에 들어가고 방아쇠를 당기면 드르륵 연발이 나간다. 당시 LMG 기관총도 연발로 사격을 하지만 3인이 일조가 되어 쟝글에 사용하기엔 무겁고 다루기가 불편한 대신 비아루는 M1소총보다 무겁지만 개인이 휴대할수 있는 장점이 있다. 육군은 한개 분대에 한정씩 배치 되지만 해병은 한개 분대에 세정씩 있어 일개 소대엔 아홉정의 비에알 소총이 주력 화기로 배치되어있다.
이어서 실탄 250발과 철모 와 대검, 처음보는 방탄복,한국에서 보던것과 다른 개량된 수류탄 네발, 최류탄, 그리고 압박붕대와 모기약과 야전삽등이 지급되었다. 이것을 다 배낭에 넣고 짊어지니 “아이고 이것을 메고 어떻게 빨리 달리수 있나? 한숨이 나온다.
미 해병들이 착용한 모습을 보니 우리와 비슷한 무장을 하고 있으나 우리와 다름 점이 있다면 M14 개량된 자동 소총을 가지고 있었고 실탄도 M1 소총 실탄 보다 작고 가벼워 그 많치 이점이 있다. 그리고 앞으로 M16 신형 소총으로 대체 된다는 소문은 들려오나 아직 이곳에 도착 하지는 않고 기다릴 뿐이다.
병사가 잘싸우려면 사기가 충천하고 잘먹여야 한다는 것을 알었는지 맥주와 담배 등이 지천으로 보급이 되었다. 버드 와이져 캔 맥주가 흔하고 한국에서 대통령의 하사품인 OB 맥주와 크라운 맥주가 입을 즐겁게 한다. 담배는 셀렘, 말보로 ,카멜, 럭키 스트라이크, 팔말 등이 흔하고 간식으로 생전 먹어보지 못한 다양한 쿠키나 캔디등이 널려있어 전쟁만 없으면 이런 군대가 세상에 어디있나? 하는 생각이 든다.
우리보다 먼저 이곳에 1진으로 온 선배들과 그동안의 겪었던 무용담과 힘들었던 이야기를 맥주를 마시며 밤이 새도록 이야기를 들었다.이역만리 남의 나라에 와서 생면 부지의 사람들과 싸울 이유가 없었다. 우리는 명령에 복종하는 군인 이기에 명령에 따라 그저 싸웠을 뿐이다. 그리고 작전 지역에 살다가 불행하게 유명을 달리한 분들과 전우에게 명복을 빈다고 하였다.
우리는 더이상 이곳에 머물지 않고 다시 공군 수송기에 올라 ‘추라이 ’라는 지역으로 공수 되었다.
처음작전
추라이 지역에 오자 맨 처음 하는일이 중대 진지를 구축하는 작업이다. 소대별로 나뉘어 원형으로 땅을 파서 사람 머리가 안보일 정도로 파되 두사람이 지나칠 정도의 넓이로 파는 것이다.어느 곳은 쉽게 파들어 가지만 어느곳은 단단하고 돌이 나와 애를 먹이기도 한다.또한 벽을 군데군데 파서 이곳에 수류탄을 저장하여 언제고 쉽게 꺼내 던질수 있도록 준비를 하였고 이 작업이 끝나자 다음은 미 해병 헬리콥터가 날라다준 원형 철조망을 진지 밖에 둘러쳐서 적들이 쉽게 접근 하지 못하게 설치하였다.
다음은 적들이 침투할수 있는 예상 지역에 크레모아 지뢰를 깔아 보강하고 철조망 앞쪽 전방에 있는 나무 사이사이 에는 조명 지뢰를 가설하여 만약 적들이 밤에 이동 하다가 줄을 건드리면 터지게끔 하여 놓았다. 또한 먹고 버린 맥주 깡통을 이용하여 밟으면 소리가 나도록 머리를 써서 겹겹이 방어진지를 튼튼하게 구축하고 진지 중앙에 81미리와 60미리 박격포 포대가 있으며 106미리 무반동포 1정이 자리를 잡고있다.
소대마다 LMG 기관총과 BAR 소총 9정이 있으며 또한 모래 부대를 교통호 곳곳에 놓아 날라오는 실탄을 막으며 사격을 용이하게 적절하게 설치 하여 만약 적들이 공격 하여도 능히 격퇴할 만반의 준비를 갖추자 이제는 방어에서 진지를 떠나 적들이 준동 하는 곳으로 이동하여 실제 전투를 치뤄야할 차례다. 우리가 위치한 지역은 월남 정부 에서도 손을 쓰지 못하는 곳이라 위험이 따르기에 방어를 튼튼히 하였고 이제는 수세에서 공세로 전환할 시점이 온것이다.
오늘은 긴장 감이 부대안에 흐르고 있다 곧 실전에 투입 되는 것이다. 실탄을 하나씩 닦어 탄창에 스무발씩 채우고 있는데 1진 고참 수병이 나에게 닦아 오더니 네 총을 전에 가진 자가 전사 하였다 한다. 베트공 용의 자를 잡아 수색 하는 과정에 갑자기 베트공이 총을 난사하여 죽었다고 상세히 당시의 상황을 나에게 말하 여 주는데 기분이 영 말이 아니다. 하필 이총이 나에게 차례가 왔을까? 언짢은 표정을 짖고 있자
옆에 있던 다른 고참이 “ 야 죽은 자의것 가지고 있으면 더 재수가 있는데 넌 죽지 않을거야 ” 하고 위로 하는데 조금 위안이 된다“ 난 죽지 않을 거야 ”속으로 다짐 하였다.
최 3소대장은 내일 작전 나가는 지역을 지도를 펴놓고 한참이고 들여다 보고있다 .
중대 단위로 작전을 나갈시는 포를 유도하는 관측장교가 함께하지만 그렇치 못할 경우가 발생 할때는 소대장이 대신 임무를 이어받아 지도를 보고 현재 아군의 위치와 상황을 대대본부에 위치한 105미리 포대에게 정확이 신속하게 알려주어야 유능한 소대장이다. 어둑 컴컴한 쟝글에 웅크리고 있는 적을 제압하려면 포병의 지원이 절대 필요하다.
최 소대장은 소대원을 집합시키고 전투에 임하는 자세와 그곳의 지형이 어떻게 생겼으며 우리가 무엇을 조심 하여야 하는지 차분히 설명한다. 이곳은 월남 정부의 통제를 벗어난 위험 지역이라 어러가지 위험이 따를 것이니 조심하고 필승을 다짐한다.
다음날 아침 헬기를 타기 위하여 우리는 열을 지어 일곱명씩 조를 지어 긴장한 눈으로 하늘을 바라보고 있다 . 방정맞게 “혹시 오늘 이곳으로 다시 돌아오지 못하는것 아냐 ? ” 하는 생각이 들고 야릇한 흥분과 긴장이 나를 감싸고 있다.
내가 타야할 헬기는 1파 1번기이고 맨 선두의 헬기를 타야한다.잠시후 “ 파바바박 파바바박 “ 소리를 내며 새떼같이 헬기가 나타나는데 몸체에 ‘MARINE’ 이라고 써있고 그 위용이 하늘을 압도하며 하나씩 하나씩 풀밭에 내리는데 강력한 바람이 몸이다 흔들릴 지경이다.
처음 타보는 UH1헬기다 .앞 좌석에 미 해병 두명이 앉아있고 출입문에 기관총을 웅켜쥔 사수가 검은 선 글래스를 착용하고 손을 치켜들며 어서 타라는 시늉을 하고있다. 완전 무장을 한 해병 일곱명이 날세게 올라타자 마자 헬기는 땅을 박차고 하늘로 솟구친다.
대낮인데도 어둑 컴컴하게 쟝글이 우거진 숲위로 수십대의 헬기가 날라 가는 장면은 정말 장관이다. 얼마동안 비행하다가 한국의 시골 부락 처럼 생긴 마을앞 논바닥에 착륙하고있다. 헬기의 날개 회전 바람이 어찌나 강력한지 누렇게 익은 벼들이 죽 누워있다.
내가 탄 헬기가 맨처음 착륙하자 우리는 평소 연습 한대로 헬기를 중심으로 몇발자국 나아가 엎드려 사주 방위를 하고 있는데 헬기 사수가 갑자기 실탄을 발사하기 시작한다.전방을 바라보니 검은 옷을 입은 사람이 논을 가로 질러 뛰어가는 모습이 보인다. 나도 반사적으로 몸을 일으키며 뛰어가는 검은 옷 입은 사람에게 비에알 소총 방아쇠를 당기니 “ 드르르륵” 소리를 낸다. 처음으로 사람에게 사격을 하는 순간이다 내 총에 맞었을까?
잠시후 헬기들은 날라가고 우리는 대열을 맞추어 마을 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데 다른 분대원이 “ 여기에 한놈이 엎어져 있다” 소리친다. 한 손에는 M1 소총을 쥐고 있는데 실탄은 몇발 없었다. 헬기 사수에게 맞었는지 내가 쏜 총에 맞었는지 확인할 길은 없고 죽은 자를 발견한 자는 다른 분대원이라 오늘의 수훈은 진해가 고향인 분대장 김동해웅 하사에게 돌아갔다.
마을에 진입하니 젊은이는 어디론가 숨어 버렸고 부녀자와 어린이와 노약 자들만 놀란 표정을 하고 눈이 둥그레 우리를 쳐다보고있다. 여기 저기에 땅굴을 발견 하였고 여기에 수류탄이나 최류탄 을 집어 넣으니 폭음이 요란하다. 볓단을 쌓아놓은 놓은 곳에는 그냥 실탄을 퍼부었다. 우리와 함께 동행하는 월남정부 군인은 이 지역은 오랫동안 공산 세력 하에 있어 정부의 통제가 못 미치는 지역이니 이곳에 사는 사람들 다 그들의 가족이니 인정사정 볼것없다 한다.
마을 중앙에는 사찰이 있고 그 안에 들어가니 불상이 보이고 한문으로 여기 저기에 글귀를 적어놓아 영낙없는 한국 절간에 와 있는 느낌이다. 어느집에 들어가니 닭을 삶다가 우리가 오자 도망쳤는지 그대로 끓고 있다. 마을 뒷쪽에 가니 미군이 투하한 폭탄으로 땅이 패어져 나갔는데 집 한채 들어갈 정도로 규모가 커 비행기에서 떨어뜨리는 폭탄의 위력이 얼마나 큰지를 이때 실감 하였다. 그리고 네이팜 이 투하하여 불길로 인근에 있는 나무들이 시커멓게 타있는 모습을 볼수 있었다.
동네를 한바퀴 돌며 그들의 사는 모습을 보니 주위에 바나나 나무와 야자수가 많고 부추와 고추, 고구마 등이 한국의 농촌과 별 다름이 없고 고구마는 잎사귀가 크고 키가 큰것이 좀 다른것 같이 보인다. 집 안에 들어가니 벼를 거두어 찌지 않고 커다란 통에 보관을 하고 있고 인근에 큰 항아리들이 놓여 있는데 이것은 어디에 쓸까?
한바탕 전투가 벌어지리라 긴장하고 마을에 진입 하였지만 젊은이는 어디론가 숨어 버리고 애꿋은 개,소나 돼지를 표적을 삼아 방아쇠를 당기니 한심한 생각도 든다.다른 소대는 전과가 얼마나 있는지 모르고 우리 소대의 오늘 전과는 M1소총 한자루만 얻었으니 많은 병력과 장비와 시간을 투자 한것 에 비하여 전과가 미미 하였다. 한가지 배운것이 있다면 헬기타고 내리는 요령과 깊은 쟝글 속에 큰 마을이 있고 마을 곳곳에 땅굴이 있어 그안에 베트공들이 어디엔가 숨어 있을 것이다 라는 것과 마을 주민 들의 눈초리가 매섭고 생각보다 그들의 행동이 민첩 하다는 것이다.
당시 해병들이 사용한 병기
당시 추라이 지역에 해병은 3개 대대 병력의 전투원이 있었고 대대마다 3개 중대를 거느리고 중대마다 3개 소대를 거느리고 소대마다 3개 분대 병력이 있었다. 1개 분대 병력은 13명이고 보병을 지원할 105mm포대 6문이 각 대대에 배치 되었고 155mm 포대는 육군 십자성에서 지원하고 있었다. 중대마다 81mm와 60mm박격포대와 106mm 직사포가 있고 공중 지원은 미해병의 도움을 받았다.
내가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공산군도 박격포를 가지고 있는데 82mm와 61mm가 있다고 한다 . 우리보다 포신을 1mm 더크게 만들어 그들은 아군의 포탄을 이용하여 포를 사용할수 있지만 우리는 그들의 포탄을 사용못하게 포탄을 1mm씩 더크게 만들었다니 얼마나 지혜롭고 간교할까?
.M1 소총 : 2차 대전때 미군 보병이 사용한 단발식 기본 화기며 실탄 8발을 장전 , 유효사거리 500미터이고 명중율이 좋고 고장이 별로 없으나 총이 좀 무겁다.
.BAR 소총: M1 소총과 같은 실탄 20발을 탄창에 장전하고 작전시 250발을 휴대, 해병의 주력 화기로 분대마다 3정이 있고 흠이라면 무게가 M1 소총의 두배나 무게가 나간다.
.LMG 30:M1 소총과 동일한 실탄을 사용 세사람이 일조가 되어 사용 ,공격용 보다는 진지 방어에 유리.
.HMG50: 진지 방어용 ,탱크나 차량에, 설치 실탄이 좀더 멀리나가고 파괴력이 좋다.
.세열 수류탄: 아무리 멀리 던져도 금방 터지지 않어 우리는 안전핀을 뽑고 하나 둘 센후 던지면 땅에 닫자마자 터진다.
.연막탄: 헬기 착륙시 조종사에게 아군의 위치를 나타내기 위하여 색갈별로 사용.
.최류탄: 동굴에 사람이 숨어 있으리라 예상이 되면 눈을 따겁게 하는 최류탄을 집어 던졌다.
.M79유탄 발사기: 수류탄을 보다 멀리 던지기 위하여 개발된 무기 발사할때 ‘퐁’하는 소리가 난다.
.크레모아 지뢰: 손바닥 만한 크기에 쇠구술이 750개가 들어있어 밀집으로 침투하는 적을 섬멸할때 사용. 설치 할때나 거둘때 줄이 달려있어 번거롭고 잘못 다루면 큰 낭패를 당함.
.81,mm와 60mm박격포: 진지 방어 용이지만 중대 이상 작전시 분해 하여 메고다님 우리는 주로 캄캄한 밤에 적들이 침투할때 조명탄을 발사하여 밤 하늘을 밝히는데 사용. 포탄이 무거워 운반 하는것이 용이치 않음.
.106mm직사포: 중대나 대대진지에 사용 또는 차량에 탑재하여 사용.
.105mm곡사포: 대대진지 안에 6문이 있고 포병 장교의 유도로 포를 발사. 당시 포병 대원들은 빨간 빤쯔를 입고 능숙하게 포를 잘다루었다.
.155mm곡사포: 당시 해병은 이포를 가지지 못했고 육군 십자성 부대에서 지원 받음
통신 장비로는
.ANPR/6 무전기: 주로 소대안에서 단거리 일때 사용
.ANPR/10무전기: 중대와 중대, 대대와 대대 ,또한 헬기나 전투기 지원시 사용 .
3대대9중대
내가 속한 3대대에는 9중대 ,10중대, 그리고 11중대 이렇게 세 중대가 함께 작전을 나가는 때가 있었다. 이번 작전은 헬기를 타지 않고 도보로 중대 진지를 떠나 일주일 이상 105미리 포 사정거리 안에서 치뤄진다.
우리는 바닷가를 끼고 산재해 있는 마을들을 찾아가서 서로 말은 안통하지만 C레이션과 화랑담배등을 마을 주민들에게 건네주면 다들 좋아라고 우리를 반긴다. 아직도 월남 정부의 지배를 벗어난 지역이기에 베트공들이 출몰하는 곳이지만 대민 사업이랄까? 친교를 트기 위하여 웃는 얼굴로 짧은 언어를 가지고 의사 소통을 하며 마을을 떠났다가 며칠후에 마을을 다시 찾아오니 마을앞 진흙 길 바닥에 전에 우리가 주었던 화랑 담배를 짖이겨 놓은 것을 여기 저기에서 볼수 있었다.
우리 앞에서는 웃는 얼굴로 얌전하게 대하지만 속마음은 그렇지 않구나 ?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비가 부슬부를 내리는 가운데 우리는 오늘밤을 지낼 숙영 준비를 들판에서 하고있다. 하룻밤을 잘지라도 야전삽으로 웅크리고 들어가 몸을 가리고 사격을 할정도로 땅을 파내야한다. 힘들고 귀찮은 작업이지만 만약 베트공들이 쳐들어 온다면 몸을 숨길수 없으니 그 결과가 어찌 될것인가? …..
사람마다 생각이 달라 땅을 깊히 파는사람, 남들이 하니까 대강 해치우고 얕게 파는사람 , 설마 오늘밤에 적들이 공격 하겠어? 하며 서성대고 빈둥대고 놀고있는 사람 가지가지다.
비가 어찌나 많이 쏫아지는지 두꺼운 텐트천을 뚫고 비가 안개같이 누워있는 얼굴 위에 내리고 있고 바닥도 빗물이 스며들어 질퍽질퍽 하고 여기에 모기까지 날라와 모포를 덥고 있는데도 침이 뚫고 들어와 극성을 부리니 잠을 자는둥 마는둥 하고 있을때
밤 3시쯤에 우리 10중대에서 2km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 9중대 진지에서 요란한 총성과 포탄이 작렬하는 굉음이 ??들려온다. 나는 즉각적 으로 베트공이 기습해들어 왔구나 생각을 하였다. 9중대의 81미리 박격포대가 조명탄을 쏘아 올리고 이어서 대대본부에 위치한 105미리 포대에서도 조명탄을 계속 띄워 밤하늘을 밝게 비추고 중대 진지 주위를 포탄이 작열하고있다. 동이 틀때까지 요란한 총소리는 계속 되다가 날이 밝아지자 총성은 멈추고 우리 10중대는 9중대를 지원코자 즉각 그곳으로 달려갔다.
9중대 대원이 전화줄로 베트공 시체 다리에 걸고 질질 끌고 가는 모습이 바라보인다. 가까이 닦아가니 죽은 시체들을 들판에 죽 펼쳐놓았다. 헤아려 보니 90구 정도가 엎어져 있기도 하고 반드시 누워 있기도 한대 대부분 총상보다는 포탄 파편에 맞아 몸이 찢기어 있는 모습이다.세상에 태어나서 죽은 시체를 이렇게 많이 보기는 오늘이 처음이다.
어떤 시체는 얼굴에 얼마나 총알을 맞었는지 오징어 처럼 펴져있다. 아마도 독이 오른 해병이 탄창 하나의 실탄을 다 쏟아 부은것같다.아직도 숨이 끊어지지않고 숨을 쉬는 자도 있고 아무 상처도 없는데 죽어있는 사람도 있다. 근처에 열살 정도 되어보이는 어린이도 망태기를 메고 있다. 저 어린 것들이 여길 왜 따라와 죽었지 ? 누군가 말한다 망태기에 방망이 수류탄을 운반하는 직책이라 한다. 또한 몸이 작아 철조망 을 기어 통과 하기 쉬워 아이들을 베트공들이 데리고 다닌다 한다.
베트공들이 메고 있는 배낭을 열어보니 우리가 몇일전에 주었던 C레이션이 들어있고 양담배까지 들어있다. 우리가 주민 들에게 좋은 관계를 트려고 베푼 우리의 전략이 그들에게 통하지 않음을 입증 하는 순간이다. 우리 앞에서는 웃음지으며 반기는것 같지만 속 마음은 영 딴판이다.
9중대 대원은 우리가 도착하자 현장의 수습을 10중대인 우리에게 맡기고 서둘러 그들의 중대 진지를 향하여 출발하였다. 잠시후 헬기들이 착륙하는데 미 장성과, 기자 ,월남 정부군 고위 관계자들이 시체 더미를 바라보며 사진 촬영하고 밤에 숙영 하였던 9중대 진지를 돌아보며 81미리 박격포 대원들이 흘린 피가 여기저기 땅에 고여있는 현장을 유심히 둘러보며 안타까운 표정을 짖는다.
당시 해병들은 야영시 참호 전방에 조명 지뢰를 나무 사이 사이에 설치하고 가느다란 전선으로 죽 연결하여 캄캄한 밤중에 이동하는 물체가 줄을 건드리면 조명 지뢰가 터지며 굉장히 밝은 광채를 발한다. 이렇한 대비책이 있는줄 모르고 베트공들이 중대 진지까지 포복으로 기어 오다 조명지뢰를 줄을 건드리자 지뢰가 폭발 하면서 사방이 밝아져 그들의 위치가 노출되고 이어서 중대의 81미리 박격포가 조명탄을 쏘아 올려 사방이 대낮처럼 밝아지자 그들은 집중으로 방망이 수류탄을 던져 박격포 포대원들이 이렇게 피해가 컷구나 짐작이 같다.
또한 적들이 시체를 백명 가까이 놔두고 줄행랑을 쳤으니 적어도 두배 가량의 부상자가 있을 것이고 9중대 대원의 숫자가 이백명 정도인데 이들을 물리치기 위해서는 육백명 정도의 대대병력의 베트공들이 쳐들어 왔을 것이다 하는 계산이 나온다. 어쩌면 그들은 9중대가 도보로 이동하는 장면을 멀직이 떨어져서 병력이 얼마나 되는지 그들이 가진 무기는 무엇인지를 헤아려 보고 준비를 하였을것이고 한국 해병대가 용감 하다고 소문이 자자한데 이참에 박살을내어 본때를 보여주자 작정하고 충분한 병력을 이끌고 자신 만만하게 “따이한 라이라이 “ 외치며 용감하게 새벽녁에 쳐들어 왔지만 9중대 뒤에는 눈에 보이지는 않치만 105미리 곡사포 6문과 더멀리 육군 십자성 부대의 155미리 포대가 언제고 타격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을 몰랐을 것이다.
이번 9중대가 치룬 현장을 돌아보며 배운것은 하루밤을 야영 할지라도 참호를 깊히파야 한다는 사실이고 ,9중대 대원도 선전하였지만 105미리 포대 관측장교가 포를 잘 유도하였고 포병들이 정확히 포탄을 적소에 보내 적들을 섬멸 하였구나 하는 결론이다. 나는 보병이지만 포병의 지원 없이는 전투에 승리 할수 없으며 현대전에서는 포를 잘 사용하는 자가 승리 한다는 것을 9중대를 통하여 배웠다.
매복,정찰
월남전은 한국전 처럼 대규모 병력이 대치 하는 전투가 아니고 중대나 소대규모로 치루어지고 있음을 말하고싶다.중대 진지에서 텔레스코프를 통하여 마을을 내려다 보면 전에 정찰을 나갔을 때는 젊은 청년들의 모습을 볼수가 없었는데 오늘은 어디서 나타났는지 사람들의 왕래가 분주하다.
중대장은 최소대장에게 오늘밤 그 마을 앞에 가까이 가서 매복을 할것을 명령한다.매복은 어느 장소에 은밀하게 침투하여 몸을 낮추고 소리도 안내고 조용히 기다리다가 적이 나타나면 소대장의 판단에 따라 사격을 할건지 아닌지를 결정 하게된다.
이매복 전술은 우리 뿐만 아니라 베트공들도 자기들이 살고있는 지형에 익숙하므로 우리들을 괴롭히는데 도가 텄다.
일찍 저녁을 먹고 해가 기울어 어둠이 깔리자 소대원들은 조용히 중대 진지를 내려와 지정 한 장소로 스며 들어와 각기 포진하고 사람들이 왕래하는 길목을 주시하고 있다.
이야기해도 않되고 담배를 피워도 않되고 무전기도 볼륨을 낮추어 소리를 적게하고 웅크리고 있는데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 하더니 급기야 많은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얼른 판쵸를 꺼내 입어 상체는 가리웠으나 금새 바지가 젖어들고 앉은 곳에 물이 차오르더니 군화속으로 물이 들어와 이제는 물속에 하체가 잠길 정도가 되었다. 좀더 높은 곳이 있을까? 사방을 둘러봐도 다 물이 가득차 그냥 체념하고 총이 비가 맞지 않도록 끌어안고 물속에서 날이 새기만 바랄 뿐이다.
비가 와서 인지 다행이 사람 왕래가 없어 어둠이 가시기 전에 조용히 철수하여 중대진지로 돌아와 옷 다벗고 커피 끓여마시고 C레이션 풀어 이것저것 먹으니 살맛이 난다.
이렇게 매복을 여러차례 하였지만 적과 조우하여 전투를 한적이 한번도 없었다.어떤때는 중대장이 어느지점에 매복 할것을 명하였어도 최 소대장은 중대진지를 내려와 매복 지점에 들어가지 않고 중대인근 지역에 밤을 새우고 조용히 돌아온적도 있었다.혹 몀령불복종 아냐? 말할수도 있겠지만 상황 판단은 소대장이 하는 거니까?........
이제는 정찰 이야기
매복은 주로 밤에 실시 한다고 한다면 정찰은 낮시간에 무장을 갖추고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적의 동태를 살핀다.한번은 분명히 텔레스코프를 통하여 젊은이 들이 왔다갔다 하는 모습을 보고 마을에 진입 하니 이번에도 부녀자와 어린이 노인들만 우리를 반긴다. 전처럼 우리는 마을을 돌아다니며 바나나 따고 고구마 캐고 고추따고 놀러 나온것 같이 쇼를 하다가 일 분대 13명은 M1 소총말고 BAR과 칼빈 , 연발 되는 소총으로 무장하고 수풀 나무사이에 엎드려 숨어 있고 나머지 2개 분대 병력은 철수하여 마을에서 보이지 않는 후미진 곳에서 만약을 위하여 대기하고 있다.
얼마 지났을까? 어디서 나타났는지 검은 옷을 입은 십여명의 청년들이 나타나 무엇을 들고가며 분주하게 움직인다. 총은 휴대하지 않었어도 우리는 속삭인다 “저것들 베트공 같은데 긁어 버릴까?” 진해 출신 김동해웅 분대장이 잠자코 있더니 “ 야 훈장 받어서 무엇하니 ? 조용히 살어돌아가자” 한다.
나는 한바탕 전투가 벌어 지겠거니 생각하고 BAR 소총 방아쇠를 당기려는데 분대장 김하사가 겁이 나는지 이렇게 말하니 다들 조용히 일어나 철수 하여 소대장을 만나 지금껏 있었던 사연을 이야기 하니 소대장이 껄껄 웃으며 “내 그럴줄 알았다 김 하사는 겁쟁이 이잖어?” 한다.
소대장이 이렇게 말한 이유가 있었다. 전에 어느마을에 진입하는데 우거진 졍글 속 컴컴한 가운데 적들이 웅크리고 있다가 사격을 가하면 어쩔것인가? 이렇한 생각들을 하고 논둑에 대기하고 있는데 최 소대장이 “일분대 앞으로 전진!” 한다. 분대장이 못들은 척하고 꿈적을 안하고 있자 “ 야 임마 내말이 안들려!” 소대장이 소리치자 분대장이 겁에 질린 얼굴로” 저쪽에다 LMG좀 갈겨 주이소” 한다.
분대장이 이렇게 꾸물거리자 옆에 있던 박일병이 벌떡 일어나 BAR 소총을 난사 하며 마을 쪽으로 뛰어가자 다들 와! 하며 일어나 갈지자로 마을로 뛰어들어갔다. 이후로 서로 말들은 안하였어도 분대장은 겁쟁이다 마음에 묻어두었다.
한번은 미 해병들과 함께 이름모를 산 정상을 향하여 행군 하는데 그들이 우리와 다른 점은 M14 총을 가지고 있고 우리들보다 덩치도 크고 산을 잘 올라갈것 같은데 쟝글에 나무를 헤치고 급경사 오를 때는 우리 뒤에 쳐저 가쁜 숨을 내쉬고 있다. 그들은 어릴때 부터 자동차를 타고 다녀서인지 하체가 약하구나 생각되었다.
산정상에 오르니 마실물이 없다. 오늘따라 헬기들은 다 어디갔는지 헬기가 우리를 산 꼭대기 까지 실어 나르면 좋으련만 웬일인지 오늘은 우리를 고생시키고 마실물도 없는데…… 이게 어떻게 된거야 다들 투덜거린다.
정상 한켠에 작으마한 웅덩이가 있고 물이 고여있는데 물이 뿌옇다. 이거라도 마시자 정하고 휴지를 깔고 물을부어 정수한후 커피를 끓여 마시려는데 헬기가 날라온다. 준비하던 것들을 발로 차버리고 헬기에 닦아가니 미 해병이 고국에서온 편지 한아름을 건네준다. 산정상에서 받아보는 고국의 소식은 우리를 즐겁게한다.
정상에서 산 아래를 내려다 보고 여기저기 살피고 하산하는데 “딱-콩 딱-콩” 우리가 처음들어 보는 소리가 들리는데 고참들이 말하기를 그 총은 딱콩 총이며 구식이지만 멀리서 날라와도 맞으면 죽는다 말하는데 저쪽 풀밭에서 검은옷을 입은 한 사람이 뛰어 도망치고있다. 소대원들 전원이 그를 향하여 사격을 가하는데도 요리저리 피하여 우리 눈에 사라진다. 뛰어 가는 자를 맞추려면 조준을 사람을 따라 가지말고 조금 앞쪽으로 해야 맞춘다는 것을 후에 알게 되었다.
우리가 있는 추라이 지역은 비가 많이와 물이 풍부하지만 한국 처럼 계곡에서 흘러내리는 깨끗하고 맑은 물이 아니고 어디나 색갈이 뿌연 빛을 띄고 있다 . 날씨가 더워 정찰중 목이 말라 떠서 마시려면 영 기분이 찜찜한데 저 아래 계곡을 내려다 보니 맑은 물이 흘러가고 있어 다들 내려가 물가에 앉아 쉬고 있는데 검은 옷을 청년 하나가 바짝 엎드려 우리의 동태를 살피고 있다. 뛰어가 붙잡아 보니 소아마비를 맞았는지 하체가 정상이 아니다. 이럴경우 이자를 어떻게 처리할까? 그냥 풀어주자니 우리의 모습을 누구엔가 알려 후에 우리를 공경에 빠뜨릴것이고 죽이자니 양심이 허락치 않고 딜레마에 처해있다………
부비트랩
하늘에는 헬리콥터와 전투기로 제공권을 가지고 있고 땅에서는 탱크, 장갑차와 성능좋은 포대를 가져 월등한 군사력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베트공이나 월맹군에게 당하고 있는 이유중 하나가 그들이 설치해놓은 부비트랩에 빠지거나 걸려 피해를 당하고 있음을 들을수있다. 월남인들은 체구가 우리보다 작고 연약하게 보여도 용감하고 영리하여 어떻게 하면 우리를 괴롭힐까? 갖은 방법을 다하고있다.
그들은 사람들이 잘다니는 길목 땅을 파고 그밑에 쇠꼬챙 이나 대나무 끝을 날카롭게 한후 땅에 고정 시키고 흙으로 살짝 덮어놓아 멋모르고 발이 빠지면 군화를 신었어도 발등위로 뚫고나와 행군을 멈추게 한다. 사람이 빠지면 나 죽는다 소리 지르며 아픔을 호소 하고 몇사람이 붙어서 도와주어야 하는데 다들 사기가 떨어지고 작전에 큰 지장을 초래한다. 미국정부에서는 이를 해결 하느라 한때는 군화 밑창에 철판도 넣어 보았지만 별효과를 보지 못하였다.
이뿐인가 적들은 사람의 심리를 이용하여 걸어갈때 빈 깡통을 차는 습성을 알고 그안에 폭약을 설치하기도 하고 집안을 수색 하려고 문을 열면 푹탄이 터지게끔 장치도 한다. 또한 고추를 좋아하는 한인들의 습성을 알고 고추나 부추 밭에 작은 발목 지뢰를 매설하여 발목이 날라가게 폭탄이 터지게 갖은 방법을 다한다.
수류탄을 나무나 고정 시켜 물체에 안전핀을 빼고 물건을 들거나 치울때 터지게끔 하기도 하고 멀리서 줄을 연결하여 숨어있다가 아군이 가까이 닦아오면 줄을 당겨 피해를 입히기도 한다. 해병 이인호 대위도 정찰중 동굴 입구에서 전사하였는데 어쩌면 그도 이렇한 방법으로 당하지 않었을까? 짐작이 같다.
포탄 말고도 좀 원시적인 방법이지만 실탄을 이용하기도 하는데 실탄을 파이프 안에 밀어넣고 그 밑에 못같이 뽀죡한 것을 고정하여 땅에 살짝 묻어놓아 밟으면 총알이 날라 가 사람을 죽이거나 다치게도 한다.
내가 아는 권영근 병장은 한달후면 귀국을 하는데 마지막 정찰중 귀대중에 적과 교전중 한 전우가 전사하여 날이 기울자 다음날 시신 수습 하려고 현장에 오니 어제 모습 그대로 있어 시체를 둘이서 드는데 꽝 ! 하고 폭탄이 터져 무릎 아래가 날라가기 까지 하였다 .
지금은 이름을 잊었지만 내가 진해 병원에 있을때 한 해병이 내가 있는 방으로 들어오는데 두다리가 절단 되어있다. 어떻게 이리 되었느냐 물으니 추라이 지역에 있는 6중대가 크게 당하여 병력이 부족하자 이를 보충하느라
사령부에서 긴급히 젯트를 태워 신병인 자기도 작전 지역에 투입되어 첫번 작전에서 지뢰를 밟아 양다리가 날라갔다고 침통하게 말한다.
흔한 경우는 아니지만 적들은 대전차 지뢰도 도로에 가설하여 멋모르고 달려오는 차량을 터트리고 다음날 차량을 견인하려고 오는 것을 간파하고 차량밑에 폭탄을 설치하여 또다시 여러 사람을 죽이거나 다치게 한다.
3대대 본부
10중대 3소대 진지에서 쉬고있는데 대대본부 작전 보좌관 강용신 대위 에게서 소대장에게 무전이 오는데 3소대안에 쎄무워카라는 별명을 가진 자가 있느냐? 물어온다 최 소대장이 현재 bar 사수로 근무 잘하고 있다고 하자 그를 대대본부로 보내라고 명령을 한다.
소대장이 나를 부르더니 네가 가진것 다 내려놓고 대대본부로 헬기타고 가라고 하는데 옆에 있는 동료들이 부러운 얼굴로 나를 배웅한다.
대대본부에 오니 강대위가 나를 맞이하는데 키가 훌쩍크고 눈이 날카로우며 다부진 체격을 가지고 있다. 이곳에 오기전 포항 특수교육대 장기시간에 내가 쎄무워카 노래 부르는 것을 보고 기억하였다가 마침 작전부서에 자리가 나자 나를 불렀다고한다.
나의 임무는 작전시 조형남 대대장과, 부대대장 이면서 작전장교인 진우현 소령을 가까이서 경호하고 보살피는 일이고 작전이 없을 시는 네가 알아서 하고 숙소는 자기 텐트에서 함께 머물고 여기서 편히 있다가 귀국 하자고 한다.
아니 소총소대에서 박박기는 쫄병인 나를 부르고 강대위와 한 텐트에서 함께 지내자고 하니 이게 웬말인가?.......소대에서는 잠자리가 땅바닥에서 모포깔고 지냈는데 여기서는 야전 침대에 모기장이 있어 편히 잘수있고 내가 하는 일이라곤 밤에 2시간 교통호에 나가 보초를 서는것 이왼 별로 하는 일이 없으니 내 신세가 갑자기 이렇게 바뀌었다.
그리고 소대에서는 무거운 BAR 소총을 들고 매복과 정찰을 나갈때 비가 오면 그비를 다맞고 모기가 달려 들어도 대책이 없는데 이렇게 신선 노름을 하고 있으니 오래 살고 볼일이다.
또한 대대본부에서는 먹는것 부터 소대와 달라 여기서는 C 레이션을 먹지않고 B레이션으로 하고 식후에는 생전 처음 먹어보는 아이스크림이 가끔씩 나오는데 장교 식당이라 그런지 몰라도 전쟁터에서 이렇게 맛난 음식을 먹어보다니 .......
소대에서는 버드와이져 캔 맥주만 마셨는데 여기서는 한국의 크라운 , 오비 병맥주와 이름모를 여러 맥주까지 원하는 대로 마실수가 있으니 어찌 감사 하지 않을까?
그뿐인가 이곳엔 가까이 PX 가 있어 카메라와 전자제품등 여러가지 귀중품도 살수있고 중대 진지에서 구경도 못한 물건들이 가득하다. 그리고 한국에서 위문단이 찾아와서 공연도 하고 있으니 같은 해병이면서도 이렇게 딴 세상에서 살고있다.
그리고 이곳에 와서 A레이션이 있음을 처음 알았다 박스를 여니 그 안에 처음보는 디저트와 젤리, 캔디, 각종담배 등과 트럼프 ,편지지, 볼펜등 생활에 필요한 여러가지를 갖추고있다.
강대위는매일 참모회의에 참석하고 나는 할일이 없으니 대대본부에 위치한 105MM포대에 놀러가 그들이 훈련하고 포를 다루는 장면을 바라보는 것이 나의 일과였다 나는 보병이기에 이렇게 가까이서 105MM포 6문을 처음 보기에 모든것이 신기하다 .
전에 9중대가 베트공 1개 대대 병력이 야습을 감행 하였지만 포대 관측장교의 정확한 유도와 포병 대원들이 신속하게 포를 잘쏘아 물리친 현장을 내가 보았기에 한층더 관심을 가지고 그들의 일거수 일투족을 바라보고있다. 좀더 가까이 가니 포탄이 마당에 그득히 쌓여 있는데 포탄 탄피 뒤를 살펴보니 1953 이렇게 년도 날자가 찍혀있다.
포를 발사 할때는 항상 소대,중대, 대대가 동일한 지도를 보며 지도의 숫자나 지점이 암호로 표기 되어있다. 작전시 포의 지원이 필요할때 모든 포대가 같이 움직이며 소대장이나 포병 관측장교가 지도를 보며 원하는 지점을 말하면 우선 한발을 쏴본다. 정확히 들어갔으면 몰라도 약간 빗나가면 우로, 좌로 늘이기, 줄이기 등 용어를 사용하여 포신의 각도를 조정하면서 포탄이 정확히 명중하면 “효력사 !” 하고 관측장교가 외치면 포대 6문 여섯발이 동시에 날라와 대지를 때리면 엄청나 굉음이 적들의 혼을 빼간다.
당시 포병 대원들은 빨간 빤즈에 웃통을 벗고 행동이 날렵하고 우리가 흔히 말하는 기합이 들어있다. 이는 정신이 해이해져 포를 다루다가 조금이라도 실수 하면 가까이 포진 하고있는 아군을 죽일수 있기에 아주 긴장을 늦추지 않고있구나 생각하였다.
후에 말하겠지만 월남 참전중 최대의 대첩인 “짜빈동 전투”에서 언론은 11중대 대원들의 무공을 치하하고 포병들의 이야기는 언급하고 있지 않치만 다들 몰라서 하는 이야기다. 3대대의 105미리 포대가 정확이 포탄을 관측장교의 요구대로 떨어 뜨려 적들을 물리쳤다고 나는 확신하고있다.
한번은 대대장과 참모들이 여단본부를 방문할 기회가 있어 함께 동행 하였는데 여단 본부는 3대대 본부보다 규모가 훨씬 더크고 더 넓어 월남인 민간인들이 곳곳 에서 작업을 하고있고 마시는 물도 정수 시설을 갖추고 있으며 이곳은 밤에도 전기가 들어오는 딴 세상이다. 여단 상황실에 들어가니 벽에는 큰 상황판이 걸려있고 여기에 아군과 적군이 대치하고 있는 장면을 화살표로 보여주고있다.
여단장 이봉출 장군이 어디를 가려는지 헬기를 향하여 걸어가자 주변의 미 해병들이 그를 보자 부동 자세로 깍듯이 경례를 하는데 감동적이다.
아무튼 중대 있을때 보다 대대에 오니 더 편하고 안전하고 여단에 와보니 여기는 전쟁 하는 나라가 아닌것 처럼 위험 하다는 생각이 들지않고 이곳에서 근무하는 해병들은 어쩌면 총 한발 못쏘고 귀국 하겠다 하는 생각도 들었다.
2대대 6중대
나는 당시의 작전을 용안작전 이라고 기억 하는데 3개 대대가 전개 하는 큰 규모로 치뤄지고 있고 3대대의 10중대는 비상 대기조로 편성이 되어있었다.
긴급한 무전이 여단본부에서 오는데2대대 휘하의 6중대가 작전이 거의 끝나갈 무렵 적의 기습을 받고 중대 병력이 흩어져 난장 판이 되었으니 급히 3대대 병력이 6중대를 지원 하라는 명령이다. 3대대 지휘본부는 2대대가 지휘본부를 설치한 산 정상으로 헬기를 타고 날라가니 대대장 이 중령이 우리를 맞이하는데 얼굴이 굳어있고 울상이다.
3대대장은 비상 대기중인 10중대 병력을 급파 하였고 3대대 본부도 뒤를 따라 6중대가 작전을 벌리고 있는 지역 으로 나가는데 길가 여기 저기에 철모와 방탄복이 굴러다니고 있고 시체 썩는 냄새가 역겹다. 어쩌면 해병들의 시신이 부패 하여서 나오는 냄내가 아닐까? 생각하니 으시시하다. 해는 저물어 가는데 눈앞에 펼쳐지는 졍글의 그늘진 컴컴한 곳을 바라보니 한층더 위축이 된다. 얼마나 다급 하였기에 지니고 있는 철모와 방탄복 까지 버리고 도망을 하였을까? 상상이 안간다.
사방을 둘러 보아도 6중대 해병들의 모습은 보이지않고 날이 저물어가자 대대본부는 철수하여 몬타나 족이 있는 정상에 돌아와 하룻밤을 지내고 아침이 밝아 오는데 몬타나 족의 한사람이 무어라고 소리 지르며 손으로 산 아래쪽을 가리키고 있다. 다들 웬일인가 뛰어나가 바라보니 멀리서 두사람이 이곳을 향하여 올라오는데 해병의 얼룩무늬 복장을 하고있다.
용케도 지뢰밭을 통과하여 정상에 도착한 그들의 모습은 너무나 실망 스럽다. 한 해병은 맨발에 철모와 총도 없고 초체한 얼굴인데 곧 쓸어질것 같다. 다른 해병도 해병의 기백은 다 어디가고 축늘어져 대대장 앞에서 땅만 바라보고 있다. 이러한 모습을 바라보는 나는 “전투에서 패하면 저꼴이 되는구나?” 이러한 생각들을 하고 있었다.
그들은 2대대 대대장을 보자 엉엉 우는데 바라보는 우리들도 눈시울을 붉히고 있었다. 그들이 말하는데 작전 일주일을 마치고 중대 진지가 보이는곳 까지 이르러 쉬고 있는데 갑자기 어디서 나타났는지 검은 옷을 입은 베트공들이 까맣게 몰려 오며 “따이한 라이’ 라이 “ 소리 지르고 달려드는데 제대로 싸움 한번 못하고 대원들이 뿔뿔이 흩어져 버렸다고 한다.
이렇게 졍글에서 헤매고 있을때 헬기가 착륙하는 산정상에 올라가면 아군들이 있겠지 판단하고 갖은 고생을 다하여 여기까지 온것이다. 이들은 그래도 운이 좋았다. 남어지 장교들과 해병들은 어디로 갔을까?........
아무리 좋게 생각 하려도 이럴수가 있을까? 6 중대 병력이 이백명은 되는데 민병대 수준의 베트공들이 몰려 온다고 그렇게 쉽게 무너질수 있을까? 참으로 이해가 되질 않는다………..내가 10중대에 있을때 M1 소총 말고도 자동화기인 BAR이 27정이나 있고 LMG 기관총 있어 그렇게 쉽게 뚫리지 않을 텐데 어찌 그리 되었을까?.........
몇달후에 나도 총을 맞고 진해 해군병에 입원 하여 있을때 당시 6중대 LMG 기관총 사수와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그 내용이 믿기지 않을 정도다. 지금은 그 해병의 이름은 기억이 안나고 어디 까지가 진실인지 확인 할길이 없지만 당시의 상황을 말하는데 기가찬다.
비가 내리는 가운데 일주일을 산과 벌판을 헤매며 작전을 끝내고 진지로 귀대중에 고추밭과 고구마 밭이 펼져있는지라 마침 비도 개이고 이제 다왔으니 이것을 캐서 가져가자 하고 너도나도 고구마를 캐고 이참에 무거운 수류탄이나 실탄을 땅에 쑤셔박자 부대에 가면 실탄이 얼마든지 있으니…….. 너도나도 물웅덩이나 땅속에 밀어넣고 얼마쯤 가는데 제방 둑 아래에서 숨어있던 베트공들이 달려오는지라 황급히 LMG 기관총에 실탄을 거니 탄환이 오십발 정도만 달려 있는데 어찌할까? 다들 하는 말이 실탄이 있어야지……….........총알이 있어야지 다들 허둥대고만 있었다 한다.
기관총은 사수, 부사수 , 탄약수 이렇게 세사람이 일조가 되어 조를 이루고 작전시는 적어도 실탄을 천발 정도 지니고 있는데 지금 한발길이 정도의 실탄을 가지고 있으니 어찌할까?.......대열은 순식간에 무너 지고 흩어져 졍글쪽으로 도망치기 시작 하였다한다.
지금까지 우리는 마을과, 산을 넘나들에 베트공을 찾아 다녔고 그들이 우리에게 대항 한것이라곤 딱콩 총으로 숨어서 저격 하는 정도로 미미하였는데 지금처럼 대낮에 떼로 몰려오리라고는 상상을 못하였다고 말한다.
이렇한 한심한 사실을 그 누가 알었을까? 내가 지금껏 월남 전선에서 겪은 것이라곤 9중대가 야외에서 숙영하고 있을때 적들이 새벽에 기습하였지만 백여명을 시신을 버리고 도주한것을 직접 보았고 하늘에는 헬기와 정찰기가 떠다니고 있어 그들의 운신이 쉽지 않을텐데 어떻게 대낮에 대담하게 6중대를 공격 하려는 생각을 하였을까?
시간이 지나서야 이렇한 사실을 나는 알었지만 당시 이렇한 6중대의 어이없는 행동을 대대나 중대의 지휘관들이 어찌 알었을까?
후에 말하겠지만 6중대가 왜 무너지고 도망 갔는지 그 원인을 다들 몰랐기에 두달 후에 3대대본부도 똑 같은 일을 당하였다. 솔직히 우리는 세계 최강의 해병이다라는 자만심이 있었고 베트공들은 그저 민병대 수준으로 별거 아니다 얕잡아 보고 있었다 . 거기에다 지휘자의 판단이 미흡하여 이러한 엄청난 결과를 가져 왔다고 생각한다.
나를 대대본부로 부른 강용신 대위가 안색이 창백하고 극심한 피로를 느끼자 군의관 김수현 대위가 진찰을 하더니 아무래도 미군 병원에가서 정밀 검사를 받아보라고 한다. 나는 강대위를 따라 다낭 미해병기지에 도착하여 검사를 받은후 결과가 나오는데 악성 간염 이라 입원을 하게 되어 당분간 업무를 계속할수 없자 조경식 대위가 대신 작전보좌관으로 강대위의 자리를 이어받았다.조대위는 책상 앞에 가족 사진을 붙여놓고 있어 우리를 부럽게 하였다.
3대대 11중대
3대대중 막내인 11중대를 우리는 연안 중대라 고도 불렀고 중대장 정경진 대위를 별명으로 쪼다 중대장이다 라고 별명을 붙혔는데 그 이유는 대대참모들이 모인 회의 장에서 별말이 없이 조용히 있었고 해병의 강인함이 없고 리더십이 부족하다 느껴졌기에 우리 병사들은 이렇게 해서 그를 쪼다중대장이다 불리어졌다.
9중대 10중대는 고지대에 진지를 구축 하였지만 11중대가 위치한 곳은 평야 지대라 나즈막한 언덕 정도에 진지를 구축하고 있어 대대장과 참모들은 11중대가 구축하는 작업현장을 돌아보기로하고 헬기를 타고 날라가 공중에서 내려다보니 이건 아니다 만약 적들이 쳐들어오면 어떻게 막아내겠어? 같은 생각들을 하며 진지에 도착하니 정 중대장이 우리를 맞이하며 상황 설명을 한다.
지형적으로 지금 우리가 구축한 진지는 적의 공격에 쉽게 노출 될수밖에 없는 약점이 있다는 것을 저희들도 잘알고있습니다. 그러나 이지역을방어 하지 못하면 추라이 비행장과 대대본부가 적의 공격에 쉽게 무너질수 밖에 없기에 이곳에 진지를 구축하게 된것입니다.
현재 교통호를 두사람이 충분히 다닐수 있는 넓이와 사람키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깊이 파 놓았고 벽 군데군데를 파내어 수류탄과 실탄을 저장하여 밤에도 수류탄을 쉽게 잡아 던질수 있도록 설치하여 두었습니다. 중대 교통호 주위에는 원형 철조망으로 둥글게 둘러싸서 일차 보강을 하였고 적들이 공격할수 있는 예상 되는 도로에는 크레모아 지뢰를 설치하였고 더 멀리 떨어진 곳에는 대인지뢰를 가설하여 한층 적들이 쉽게 진지에 도달할수 없도록 조치를 하여 놓았읍니다.
그리고 더멀리 나무들이 있는 장소에는나무와 나무 사이에 가는 전선으로 연결된 조명지뢰를 가설하여 밤에 이동하는 적들이 쉽게 줄을 건드리면 폭발하여 밝은 광채를 내도록 설치를 하여 놓았습니다. 그리고 들판 곳곳에 빈 깡통을 늘어놓아 밟으면 소리가 나도록 하였고 좀더 적들의 움직임을 조기에 발견할수 있게 첨병조를 투입하여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첨병조란: 적의 이동을 좀더 일찍 발견하기 위하여 진지에서 백여미터 전방에 나아가 무전기 볼륨 낮추고 은폐하고 있다가 적을 발견하면 곧 진지에 알리는 위험한 직책이다.
다시 정리하여 말씀드린다면 진지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는 조명지뢰가 있고 그 다음은 대인 지뢰를 땅에 묻어놓았고 다음은 적이 공격한다면 예상되는 지점에 크레모아 지뢰를 설치하여 두었고 다음은 원형 철조망으로, 4차 방어선을 구축하여 적들이 우리 진지를 공격 하더라도 쉽게 뚫지를 못할것입니다. 이렇게 정경진 대위가 대대장과 참모들 앞에서 조리있게 설명 하는데 평소에 쪼다중대장 이라고 우습게 여기던 내 자신이 부끄러워 졌다.
대대장과 참모들은 조금전 까지 불안한 얼굴로 쓱 진지를 둘러 보았지만 정경진 중대장의 브리핑을 듣고 얼굴이 환해진다. 대대장은 중대장의 치밀한 방어 태세를 듣고 악수를 하여 “정대위 잘했어요” 하며 칭찬한다.
베트공이나 월맹군은 해병 1진이 이곳에 와서 어떻게 싸웠는지 용맹성을 알기에 9중대가 야외에서 숙영하고 있는 새벽에 쳐들어 왔으나 백며명의 시신을 남겨두고 패퇴 하였고 이것을 설욕 하려고 계속 해병들을 따라 다니다 2대대 6중대가 방심한 사이에 공격하여 승리를 하자 따이한 해병들 별거 아니네 이렇게 판단 하였으리라.
투망작전
1967년 새해가 시작되자 3대대는 “투망작전”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작전이 시작 되었다. 물고기를 투망으로 잡드시 일거에 적들을 제압 하겠다는 강한 의지가 담겨있다.
대대장은 작년에 9중대가 적을 격퇴한 것외는 전과가 별로 없다고 생각 하여선지 이번 투망작전에는 지휘본부를 9중대 진지로 옮겨와 적극적으로 작전에 임한는 자세다. 얼마 안있으면 우기철에 들어가 그전에 한번 멋지게 적들을 제압하여 전공을 세워보고 싶은 심정이 있을 것이다.
대대장과 각부서 장교들과 선임하사, 사병에다 이번에는 김수현 군의관도 부대안에 있는것이 무료한지 함께 우리와 헬기를 타고 9중대에 도착하였다. 올때에는 그런대로 날씨가 괜찮았는데 이곳에 오니 보슬비가 내리더니 점점 빗줄기가 거세진다. 30명이 넘게 대대 요원들이 중대장의 막사에서 비를 피하는데 앞으로 비가 계속 내린다면 작전도 어려워지고 비좁은 중대장 거처 하는곳에 계속 있을 수도 없고 해서 대책 회의를 열고 결론은 다시 대대본부로 철수하는 것으로 의견을 정한후 다음날 미 해병에게 헬기 요청을 하자 응답이 오는데 비가 오는 날은 헬기가 고공 비행이 어렵고 저공으로 날라가면 베트공들이 밑에서 총을 쏴대어 헬기 조종사들이 비행을 꺼려하니 비가 멈출때까지 기다리라고 한다.
그러면 어떡하지, 이때 군수 장교가 아이디어를 내는데 여기서 부터 안디엠 마을 앞 국도까지 3km 정도 거리이고 걸어서 30-40분이면 도착하니 대대의 트럭을 불러 이것을 타고 귀대 하자 말한다.
작전 보좌관 조대위가 현재 안디엠 마을 근처에 사람들이 몰려 있다는 정보가 있는데 그들이 농사꾼인지 아닌지 확실히 구분이 않되니 좀더 지켜보자고 한다. 이때 9중대장이 우리가 이지역을 장악하고 있고 우리 아이들이 마을에 놀러가 물건도 사오고 마을 사람들과도 친밀하게 지내고 있으니 그점은 염려 안하셔도 됩니다. 이렇게 우리를 안정 시킨다.
대대장이 여러 의견을 듣고 결정하기를 “그러면 대대에 연락하여 안디엠 마을 앞으로 트럭을 준비시키세요” 명령을 내리고 C레이션으로 점심을 먹고 소대 호위 병력을 차출하여 단독무장을 하고 1개 분대는 선두에 중간은 대대요원 그다음 2개 분대가 후미를 따라 가도록 한후 서서히 중대 진지를 내려와 들판길을 따라 행군하기 시작하였다.
단독무장:정찰이나 이동시 별위험이 없다 판단될시는 허리에 가볍게 실탄을 휴대하고 신변을 보호 하는정도로 무장을 하는경우
중무장 :작전에 투입될때 BAR사수인경우 실탄 250발과 수류탄4발을, M1소총도 적어도 백발이상 실탄을 보유 하여 전투시 달리지 않게 무장을 하는경우
그때가 1967년 1월 10일 오후 2시경
좁은 논두렁 길을 걸어갈때는 한줄로 긴 행렬이 이어지고 있었고 작전장교 , 다음은 대대장, 그리고 나 , 다음은 통신병 이렇게 자연 스럽게 한조를 이루어 나아가는데 저 앞에 마을이 바라 보이고 산 모퉁이를 돌아가는데 선두에 있는 누군가 소리친다 “ 저 앞에 사람들이 몰려있는 모습이 보이는데 아마도 총을 가진것 같다 베트공들 아냐? ” 하고 소리치는 동시에” 따다-다다 ,드르륵 드르륵 AK47 총 소리가 들려오고 이어서 아군도 실탄을 발사하기 시작하였다.
우리는 황급히 논두렁밑에 엎드려 사방을 둘러보는데 우리 옆으로 울창한 나무숲이 펼쳐져있고 그쪽에서 총알이 날라오는것 같은데 사람들의 모습은 보이지 아니한다.
군수 선임 곽상사가 “ 아니 이지역은 안전 지대라고 하여 왔는데 이게 무슨 소리야!” 하며 소리친다. 당시 대대요원은 대부분 장교와 선임하사 와 통신병, 의무병 이고 전투요원이 아니라 가볍게 총 한자루에 실탄 십여발 정도를 휴대한 정도였다.
우리를 경호하고 있는 소대원들도 평소처럼 단독 무장으로 가볍게 하고 우리를 따라오다
갑자기 총알이 날라오자 다들 안색이 변하고 오래 해병 생활을 하여 6.25 전투에 참여하고 화랑무공 까지 받고 평소에 전투 경험이 많다고 자랑하던 고참 상사들은 총을 끌어않고 어떻게 하면 여길 빠져나갈까? 하는 눈치다.
우리가 가진 권총과 칼빈 정도로 자동소총을 난사하는 적들과 싸운다는 것은 계란으로 바위치기다.현재 우리는 다들 십여발 정도의 실탄으로 무엇을 해보겠다는 것인가 ?
당시 대대장 인근에는 ANPR/10 무전기를 멘 통신병이 여럿이 있었는데 대대와 연대, 대대와 중대, 105미리 포대, 미해병 헬기 부르기 위하여 긴 안테나를 올리고 있어 적들도 이곳에 지휘자가 있을것이라 판단 하였는지 집중적으로 우리쪽으로 사격을 가해오고 수류탄이 날라온다.
내뒷편에 있던 통신병이 갑자기 땅에 엎드려 기기시작 하더니 그대로 들어눈다 총알이 철모를 뚫고 들어온것이다. 그 옆에서 다른 통신병이 “서울역 서울역” 암호문을 외치고 있는데 “아이쿠 “하며 수화기를 떨어 뜨리는데 손바닥에 하얀 뼈가 보이고 피가 솟구치자 엉엉 울고 있는데 주위에 있던 장교들이 겁에 질려 보고만 있기에 내가 달려가 압박붕대로 손을 싸매고 있는데 “ 그리니드----! ” 하는 소리가 들린다. 그리니드는 영어로 수류탄이다 미해병 헬기를 부르는 미해병 장교가 외치는 소리다.
위를 쳐다보니 까만 수류탄이 포물선을 그리며 나 있는 쪽으로 날라오고 있지 않는가? 나는 황급히 통신병을 밀치고 함께 물이찬 논 바닥 그대로 엎드리니 잠시후 “꽝” 하며 물기둥이 하늘로 솟아오른다. 어디 맞았나 가만히 손과 발을 움직여 보고 온몸을 쓰다듬으니 다친데가 없다. “하마터면 죽을뻔 했잖어!” 나는 이렇게 부르짖었다. 통신병도 손에만 총을 맞었지 멀쩡하다. 이러고 있을때 후미에 남어있던 분대원이 달려온다.”
곽상사가 “얘들아 저쪽이다 저쪽에 수류탄을 던지고 실탄을 퍼부으라고!”
2분대장이 “상사님 저희들도 수류탄이 없어요…….실탄도 얼마 안 남아 있구요……..” “뭐 라고 실탄이 없어? ……. 아이구 우린 여기서 다죽네!.......” 곽상사가 절규하며 부르짖고 있다. 수류탄을 엎드려서 우리에게 던진다면 적들이 지척간에 우리 가까이 있는것이다. 이렇하니 105미리 포대에게 도움을 청할수도 없고 관측장교와 통신병도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도 않고…….우리를 호위하는 소대 병력도 중무장이 아니고 단독 무장으로 가벼운 차림으로 따라 왔으니 어떻게 하면 좋으냐? ………...
곽상사가 우리 다죽었네 외치는 소리를 듣자 전열은 갑자기 무너지고 다들 허둥대기 시작하였다. 지금은 기억이 안나지만 누군가 달려와 대대장에게 김수현 군의관이 전사 하였읍니다 보고를 하자 대대장은 한마디 말도 없이 창백한 얼굴로 듣고만 있다. 내가 그가 가진 권총을 보니 안전핀도 풀지않고 잔뜩 쥐고만 있다.” 대대장님 안전핀을 풀으세요” 내가 말하자 엉 하며 그제서야 안전핀을 푼 다.
대대장을 위시해 여기에 온 각부서 장교들이 후방에서 지휘만 했지 한번도 작전 후론트 라인에서 전투를 해본 일이 없기에 이처럼 당황하고 무서워 하는것이 어쩌면 정상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 하였다.
한달전쯤인가 2대대6중대가 패한 원인이 실탄이 없어서 그지경이 되었는데 지금 우리도 똑 같은 일을 당하고 있는것이다. 아! 작전보좌관이 출발하기전 사람들이 이근처에 몰려 있다는 정보를 듣고 좀더 확인을 해보자는 말을 듣고도 왜 신중하게 전후를 살피지 않고 이렇게 경솔 하게 움직였을까? 후회 막급이다 이렇게 생각 하고 있을때 “ 드르륵” 하는 소리가 나는 동시에 뜨거운 불덩이가 왼쪽 엉덩이 부근으로 쑤시며 들어오는데 나는 “으 악” 하며 소리를 질렀다.
손바닥으로 상처를 대보니 피가 쿨컥쿨컥 쏟아지고 있다. 순간 나는 여기서 죽는구나 직감으로 느껴졌다. 바로 옆에 있는 통신병도 종아리 뼈를 맞었는지 기역자로 꺽어져 덜렁 거리고 있고 울부짖고 있다. 불과 몇분 사이에 통신병 세명이 쓰러지고 나까지 총을 맞자 바로 옆에 대대장과 작전장교는 여기 있다간 다죽겠다 생각을 하였는지 오던길로 급히 돌아가기에 “나 아직 안죽었어요” 내가 소리를 질러도 뒤도 돌아보지도 않고 황급이 자리를 떠나갔다.
사방을 둘러보니 서울 약수동에서 함께 해병에 지원하였고 3대대에서도 함께 밥을 먹는 차태근 해병이 5미터 전방 논둑 에서 엎드려 웅크리고 있다가 나와 눈이 마주쳤다. “태근아 나좀 도와주라 어떻게 피좀 막아줘! ”내가 힘없는 소리로 말하자 눈동자를 다른 곳으로 돌리고있다.
우리는 적의 매복에 걸려있다 우리는 논바닥 논둑에 붙어있고 적들은 위장 하여 숲속 나무 사이에서 우리를 훤이 내다보고 조준하여 움직이는 물체에 사격을 하고있는데 나를 도우려 움직이다간 자기도 총맞을까? 겁을 내고 있는것이다.
포기하고어떻게든 좀더 안전한 곳으로 기어가려고 시도 해보았지만 꼼짝을 못하겠다 .물속에서 머리만 내놓고 그저 누워있는데 근처에 있는 사람이라곤 헬기를 부르는 미해병장교가 다리에 총을 맞었는지 논 물속에 우두커니 앉아있고 요란한 총소리도 없고 사방이 조용하다 . 내옆에서 같은 시간에 종아리에 총을 맞은 통신병도 그다리를 끌고 어디론가 사라졌다.
이러한 와중에도 생각은 끊임없이 떠오른다.
가금리 소대에서 배고프고 빳다 맞드라도 참고있지 이방나라 이름도 모르는 들판 논바닥에서 죽는구나?
처음 가까이서 엎드려 있는 사람을 쏠때 그가 베트공인지 민간 인인지 구분이 안되는 상황에서 방아쇠를 당겨 총알이 그자의 엉덩이 부위에 들어갔는데 나도 비슷한 곳에 총을 맞다니 이것이 “응보”라는 죄값인가?.........이것 말고도 내총에 얼마나 사람들이 맞았을까?........
나도 할말이 있는것이 우리가 전개 하는 작전 지역에서 젊은 이들이 돌아다니고 있으면 그자가 베트공 인지 양민인지 언어가 안통하니 알길이 없고 우리와 함께 참전한 월남 정부군이 이지역에 사는 사람들이 다 베트공의 동조자라고 인정사정 볼것없으니 알아서 하라고 하지 않었던가?............
엄마는 서른 일곱에 세상을 떠나가셨는데 나는 엄마보다 더일찍 가네…….이러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피가 다 빠져서인지 지독하게 아픈 통증도 사라지고 차가운 물속인데도 갑자기 몸이 따듯해지며 솜이불에 누운것같이 포근해지며 황홀한 느낌이 들며 몸이 공중에 붕 떠다니는 느낌이다. “아니 내가 왜 이래 사람이 죽을려면 이렇게 되는거야?........
얼굴에 비가 내리는 것을 막으려고 철모로 가리우고 있었는데 실눈을 뜨고 옆을 바라보니 하늘에서 색색의 아름다운 빛이 내려오고있다. “아니 이지역은 졍글이고 비가 내리는데 어디서 이렇한 빛이 내려오는거야? 혹시 사람이 죽으면 저빛을 타고 가는거야?.?....... ”나는 놀라 한참이고 하늘을 바라보고 있는데 문득 어릴때 큰 아버지 집에가서 제도용 콤파스를 가방에 넣고 온 생각이 난다. 나에게 아무 필요도 없는 것을 왜 가지고 왔을까? 이어서 나의 못된 지난날의 부끄러운 모습들이 슬라이드를 보는것처럼 떠오르는데 후회 막급이다. 그때 왜 나는 그짓을 하였을까?..........
총성도 멈추고 조용한데 철벅철벅 물을 차고 달려오는 소리가 들리며 내 앞에서 멈춘다.“ 너 쎄무워카 아냐 야 임마 너 절대 총 안맞는다고 큰소리 치더니 …..”흑 흑 하며 9중대 대원 김평택이 울고있다 . 이어서 방재윤이 뛰어오더니 “지금 치누크 헬기가 착륙 하려고 빙빙 돌고있다 너 이거 못타면 죽는다 시간이 없어 !” 9중대에 남어있던 병력이 우리를 구하려 달려온것이다.
방재윤이 나를 업고 김평택이 바치고 몇발자국 못가서 다들 넘어졌다 . 논바닥의 진흙에 셋이서 합하니 중량으로 발이 빠져 걸을 수가 없게되자 그냥 끌고가자 하며 둘이서 내 어깨를 잡고 헬기가 내린 풀밭으로 한참이나 끌고 헬기에 도착하니 미해병 대원이 나를 끌어당긴다. 이어서 시신 네구가 실리고 헬기는 떠오르는데 밑에서 사격을 가해 오는지 동체가 퍽퍽 구멍이 뚫리는 소리가 난다.
다낭 기지에 도착하여 헬기가 해치를 내리자 양쪽에서 군인들이 대기하고 있더니 시신은 바닥에 던지듯 놓고 나를 보더니 자기 목을 끓어 안으라고 한다. 이때까지 정신이 있었는데 깨어나니 커다란 하얀방에 흰 까운을 입은 두사람이 나를 내려다 보고있다. 한분이 왼쪽 엄지 발가락을 만지며 움지여 보라고한다. 내가 발가락을 움직이자 “YOU LUCKY! ”하며 소리친다.
나는 집도의사가 유럭키 하며 소리친 그뜻을 50년이 지나서야 알게 되었다. 총알이 대퇴 관절을 깨트리고 바로 신경 가까이 에서 멈춘것이다. 조금만 더 나아가 신경을 끊었으면 평생 왼쪽발을 사용 할수 없다고 한다. 항상 내 발이 저린것은 총알과 신경이 붙어 있다고 믿고있다. 세분의 전문의가 총알을 제거 해주겠다고 시도 하였으나 다들 포기하고 물러섰다.
가슴부터 다리까지 기브스를 한후 변을 볼수 있게 엉덩이 쪽만 열어놓은체 병실에 오니 김연상 준장과 참모들이 침통한 표정으로 들어선다 . 이봉출 장군 다음으로 사령관이 되어 3대대에 찾아와 내가 거처하는 텐트 안에도 들어와 악수하며 수고한다고 자상한 모습을 보여 주었는데 지금 얼마나 당황하고 있을까? 내가 되려 위로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
잠시후 이곳 해병병원에서 근무하는 위생병이 소식을 주는 데 장교 5명 , 사병 29명이 전사 하였다 한다. 내가 속한 작전 부서에서 제주도 출신 김하사와 강용신 대위 대신 작전 보좌관으로 임명된 조경식 대위가 전사 하였다.
평소에 대대본부에서 책이나 보고 편하게 지내던현 군의관도 세상을 떠났갔다 . 군의관이 월남 전선에서 사망 한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1965년 부터 한국군이 월남참전 이래 한시간도 않되는 전투에서 최대의 패배를 기록한 날이 바로 오늘이었고 짜빈박 전투였다.
진해 해군병원
갑자기 밀어닦친 부상병으로 온통 병원이 난리다. 소변이 마려워 영어로 오줌 누고 싶다는 말을 영어로 못하고 있자 멀직히 떨 어져 있던 오세창 대위가 간호원을 불러 친절하게 도와준다. 음식을 전혀 먹지못하고 닝겔만 꽃고 필리핀에 위치한 클라크 기지로 옮겨왔다. 나를 침대에서 내려 비행기로 옮기는 동안 내리고 올리고 할때 병원 근무자들이 얼마나 세심하게 조심을 하는지 그들의 마음이 내 마음으로 옮겨온다
클라크 병원에서 대구 비행장까지는 미군들이 후송 하여주었고 대구에서 진해까지는 한국공군이 담당하여 진해 비행장에 도착하여 해병 엠브란스에 옮기는 과정에서 어찌나 거칠게 대하는지 여기가 한피를 나눈 조국 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운전자가 담배있냐 물어오는데 나는 아무것도 가진것이 없는데 무슨 담배가 있는가? 그래서 인지 몰라도 진해 비행장에서 부터 해군 병원까지 오는동안 운전자가 어찌나 차를 난폭하게 모는지 “살살 달려라 아퍼죽겠다 ” 소리쳐도 들은 척도 안하고 마구달린다. 다낭에서 ,필리핀에서 외국인 간호사와 병원근무 자들이 따스한 얼굴로 우리를 대하여 주었는데 막상 고국에 돌아오니 말투부터 투박하고 아주 불친절하다.
다낭에서 여기까지 오는 일주일 동안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있다가 진해병원에서 밥과 된장국 냄새를 맡으니 식욕이 일어나 처음으로 밥 한그릇을 비웠다. 병원은 갑자기 밀어닦친 부상 해병들을 수용하기 위하여 강당을 급조하여 병실을 만들었고 내가 누워있는 침대 앞에는 “복잡골절분쇄 ”라는 팻말이 붙어있다.
당시 월남전 초창기라 각 단체에서 병문안을 줄을서서 들어오는데 가뜩이나 복잡한데 면회오는 사람까지 북새통을 이루고있다.
총맞은 왼쪽 다리가 짧아지자 침대 네 구석에 파이프를 연결하여 구조물을 만들고 중앙에 줄을 내리어 종아리 뼈에 구멍을 내고 추를 달아 당기고 있다. 물소똥이 있는 곳에서 오래 있어서인지 감염이 심하여 예쁜 간호장교들이 교대로 고단위 항생제 주사를 어깨에 투여하는데 어떤분은 딱 때리고 순간에 바늘을 찔러 아프지가 않은데 어떤분은 바늘을 푹 찔러 아이구 아퍼 소리가 절로난다. 그래도 총 맞는 아픔에 비하면 새코에 먼지니 감사하다.
소변은 닝겔병에 끈을 매달아 처리하고 대변은 해군 장병들이 하체를 들어 거기에 팬을 놓고 하는 지저분한 절차를 안색 한번 찡그리지 않고 도와 주어 항상 감사 하게 생각하였다.
아침이면 스피커로 아름다운 클래식을 틀어주고 잠을깨워주고 기다리고 있으면 해군장병들이 흰쌀밥에 버터를 위에 놓고 김과 간장으로 말아주는데 맛이 꿀맛이다 끼니때마다 반찬이 다르게 나와 특별대우를 핸준다 하는 생각을 떨쳐 버릴수 없다.
대통령 하사품이라고 쓰인 대형 TV도 설치하여 우리를 즐겁게 하여 주었고
여기는 점호도, 구보도, 빳다도, 구타도, 정찰도, 매복도,전투도 없이 자고 싶으면 자고 그저 놀고만 있는데 문제가 있다면 가끔씩 다리 상처가 아프고 쑤셔 움직일수가 없는것이 문제랄까?...........그리고 생각은 끊임없이 월남에 있었던 장면들이 떠오른다.
치누크 헬기가 오지 않었으면 나는 죽은 목숨이다 .비가 오면 헬기가 뜨지 않는데 용기 있는 미해병 조종사에게 감사한다.
그리니드를 영어로 그뜻이 무엇인지 몰랐다면 나는 폭사 하였을것이다.
왜 비좁드라도 9중대장 막사에 참고 비가 그치기를 기다리지 다들 조급한 결정을 하여 엄청난 결과를 가져 왔을까?
대대장과 작전장교는 쓸어진 나와 통신병을 보고도 어디로 피신?........ 하였을까? 후에 알었는데 9중대 진지로 돌아가서 도움 받으려고 했다늗데 ?…….
.나와 같이 쓸어진 통신병은 그 다리를 가지고 어디로 갔을까? 끝내 병원에서 그를 보지 못하였다.
.나는 물속에 쳐박혀 살았지 움직였으면 확인 사살을 당할뻔 하였다.
.후에 알었는데 총맞은 해병들을 베트공들이 방탄 조끼를 제치고 착검하여 찌르고 우리쪽으로 오고 있었다고 한다.
.강원도 출신 위생병은 나와 비슷한 장소에 총을 맞고 같은 병실에 입원하고 있다.
.작전보좌관이 그지역에 사람들이 몰려있으니 확인이 될때까지 기다리자는 의견을 하였는데 대대장과 참모들은 왜 무시하였을까?
.9중대 대원은 안디엠 마을을 수시로 들락거리고 이지역이 안전하다고 믿고 있었는데 다 그들의 술책에 말려든것이다.
.총알이 없다는 분대장의 말을 듣고 선임상사들은 진짜 부들부들 떨었다.
.아무리 우리가 용감하고 훈련받고 우수한 무기를 가지고 있어도 총알이 없으면 무슨 소용이 있나 그저 오합지졸일 뿐이다.
.하늘에 헬기가 있고 후방에는 105미리 포대가 항시 대기하고 있는데 베트공들이 감히 우리를 공격 하였을까?
.포대 관측장교는 당시 어디에 있었는지 포대 포탄이 한발도 날라오지 않었다.
.대대장은 권총 안전핀도 풀지 않으체 겁에질려 상황 판단을 제대로 못하고 있었다.
.최고 특과인 군의관 김수현 중위는 하필 오늘 따라와 변을 당하였을까?
.나를 부른 강용신 대위는 악성 간염이 그를 살렸으니 전쟁에도 운이있나?
.강대위의 자리를 메꾸려 온 조경식 대위는 가족 사진을 벽에 붙혀놓고 부임한지 며칠 않되어 변을 당했으니 너무 안타깝다.
.제주도 출신 김하사는 나와 대대에서 대화를 제일 많이 하였는데 작전지도를 빼앗기지 않으려고 배안에 지닌체 사망하였다고 후에 알었다.
.9중대 소대장 둘이 전사 하였다는 소식도 후에 알게되었다.
피가 다빠져서 죽으려는지 차가운 물속인데도 몸이 따뜻해지고 솜이불에 누운것같이 포근하고 극심한 통증이 사라지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죄라는 것이 무엇인지 죽음에 임박해서 까맣게 잊었던 부끄러운 모습이 떠오르는 것은 어째서일까?
.인과응보라는 말대로 내가 행한대로 죄값을 받는가?
.비가 오고 구름이 덮힌 하늘에서 내려오는 아름다운 빛은 어디서 오는걸까?..........
전사통보
아버지가 소식을 받고 병원에 오셔서 막 우시며 말씀 하시는데 기가 막히다.
한달전에 사령부에서 사람이 나와 내가 어느어느 전투에서 사망 하였다고 알려주는데 온가족이 소리 높혀 울었다고 말씀 하신다. 사령부에서 유가족으로 정부에서 제공 하는 원호혜택 신청을 어떻게 신청 하는지 가르쳐 주었고 원호처에서 수속을 밝고 있는데 나에게서 바나나 껍질에 쓴 편지가 도착하여 보니 내가 사망하였다는 날 후에 쓴 편지라 이상 하다 생각 하고 있는데 해군병원에서 입원하고 있다는 소식을 받은것이다.
어째서 이렇한 일이 발생 하였을까? 생각 하여보았다.
월남에서 캄란을 거쳐 투이호와에 오니 아름다운 백사장이 길게 펼쳐있고 그 앞에는 새파란 바다에 파도가 넘실 거리고 있다. 캄란 항구에서 바라보이는 장관을 보고 참으로 아름답다 감탄 하였는데 이곳 투이호와도 캄란 베이 못지 않게 아름다워 서인지 미군들 휴양지가 이곳에 자리잡고 있다한다.
어쩌면 한국의 대천 해수욕장 과 비교할수 있을까? 생각도 하여보았다........
이곳에 오니 본부에서 사진반이 나와서 한사람씩 독 사진을 찍고 후에 가느다란 줄이 달린 메달을 주는데 내 이름과 군번이 적혀있다.
어쩌면 이것이 내가 사망 하였을시 본인임을 확인 하기 위하여 하는 절차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데 기분이 찜찜하다.
작전 지역에 돌아다니다 상황에 따라 다르겠지만 전투중 사망한 시신을 어떻게든 회수하여 본대로 가져 오려고 하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가 얼마든지 발생할수 있어 시신 수습이 안될경우엔 실종 처리되는데 아마도 이렇한 과정에서 잃어버린 메달을 현장에서 습득하여 보고 하는 과정에서 이렇한 일이 발생 하였구나 추측을 하여보았다.
아버지는 네가 죽지도 않었는데 이렇게 살아있으니 너는 앞으로 장수 할것이다 말씀 하시며 작고 예쁜 트란지스터 새 라듸오를 주시며 병상에서 심심할텐데 쓰라고 하신다.
아버지가 돌아 가시고 몇일 않되어 낮잠을 자고 일어나니 라듸오가 없어졌다. 처음에는 누가 필요하여 듣다가 갔다 놓겠치 하였으나 밤이 되어도 가져오질 않는다.
이소식을 들은 대대선임 상사가 움질일수 있는 모든 해병과 해군들을 집합시켜 “야 이새끼 들아 그래 훔쳐가는 것도 정도지 이렇게 꼼짝도 못하고 누워있는 전우것을 훔치냐 너희들이 사람이냐?” 호통을 친다.
분명히 이들 가운데 누군가 가져가 끝내 자수를 안하자 한사람씩 돈을 거두어 비슷한 것으로 사가지고 나에게 주는데 나 때문에 병실 분위기가 험악해지고 다른 분에게 피해를 주니 죽을 맛이다.
진해 변전소 김혜원씨
낮잠을 자고 있는데 아름다운 합창 소리에 잠을 깨었다. 김혜원씨가 교회 중등부 학생들을 데리고 병원에 찾아와 성가곡을 부른후 내가 있는 병실로 들어와 나에게 내 침대 머리맡 에서 눈을 감고 기도 하시는데 눈물을 흘리며 “국가의 부르심을 받고 이역만리 월남 땅에서 전투하다 부상당하여 누워있는 김상병을 하나님의 손으로 치유시켜 달라고 ”기도를 하시는데 나도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병실을 나가시다 다시돌아오시며 빨간 색의 두툼한 “성경전서”를 나에게 건네주며 심심할때 한번 읽어 보라고 하신다. 시간이 널널이 있고 할일도 없으니 처음으로 성경책을 열어 창세기 첫 페이지를 보니 “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 하시니라…………”로 시작되는데 순간 내 마음속에 오래전에 자리잡고 있던 안개같은 문제가 풀어지는 느낌을 받었다.
여기서 잠시 스톱하고 이세상의 모드것은 하나님이 만드셨구나 전에 몰라던 부분을 알게 되었고 그 말씀이 믿어진다.이어서 계속하여 읽어 가는데 간혹 이해가 않되는 구절도 있으나 대부분 이해가 되고 삼국지를 보는것처럼 재미가 있다.
창세기에는 하나님이 엿새동안에 우주 만물을 만드셨고, 흙으로 아담과 이브를 만드시고 당시에는 사람들이 9백살 정도로 수명이 길었으며 노아 시대에 인류의 범죄함으로 물로 심판 하시는 장면과,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삶을 보며주며, 요셉을 형들이 은이십을 받고 종으로 팔려갔으나 후에 애굽의 총리 대신이 되어 그 가족 70명을 구원하는 스토리가 재미있다.
이어서 출애굽기를 보니 야곱의 가족이 애굽에서 크게 번창하였고 후에 모세라는 인물이 백성을 이끌고 광야에서 하늘에서 내리는 만나라는 음식을 먹으며 사십년간 광야의 삶을 보여준다. 여기까지는 재미있게 읽었으나 레위기를 읽는데 무엇이 무언지 잘 모르겠다.
내가 성경을 읽어 내려가자 병실을 돌며 환자를 지켜보던 김규열 전도사가 나에게 관심을 가지고 여러가지를 챙겨주며 후에 상처가 점차 치료되어 크럿치를 집고 걸을수 있게 되자 노래를 좋아하는 나를 병원안에 있는 강당으로 인도한다. 대형 피아노에 김전도사가 찬송가를 치시는데 얼마나 멋있는지 나도 차차 따라 부르기 시작 하였다.
“저높은 곳을 향하여” 찬송가 310장을 처음으로 불렀는데 곡조와 가사가 나에게 딱맞아 5절 가사를 다암기 하여 불렀다.
이렇게 성경을 읽고 찬송을 부르다 보니 강팍하고 메말랐던 나의 심령이 점차 부드러워 지는것을 느낄수 있었다.
병원에 입원한지 넉달이 되었어도 상처에서는 매일 노란 고름이 나오고 구멍이 뚫려있어 치료하는 군의관이 나만 보면 밥맛이 없단다. 매일 정성껏 치료하는데도 치료의 진전이 없자 하는소리다. 매주 월요일이 되면 모든 군의관이 함께 환자를 보며 서로 의견을 주고 받는 회진시간이다.
방 정형외과 과장이 우리들 앞에서 이러한 말을 하였다,” 우리는 학교에서 배운 지식과 경험을 통하여 여러분을 치료하지만 우리가 할수있는 것이 다 한도가 있고 모르는 것들이 너무나 많다. 이러할때 여러분들이 신앙을 가지면 치료의 도움이 될수도 있으니 참조하라고 하는데 내귀에 이말이 쏙들어온다.
진해 남부교회
마침 이때 김규열 전도사님이 이번주부터 진해남부교회에서 부흥회가 열리니 한번 참석하지 않겠느냐 하는데 내가 거절한 이유가 없어 생전 처음 교회 예배에 참석하니 군복을 입고 목발을 집고 있는 나를 보고 사람들이 힐끗힐끗 나를 쳐다본다.
찬송을 크게 부르고 많은 사람들이 통성으로 기도하여 처음에는 분위기에 어색하였으나 점차 익숙하여진다. 설교 하시는 분은 일본인 히다까 목사인데 사랑이라는 제목을 가지고 말씀 하시는데 내 마음의 정곡을 찔러 참으려 해도 눈물이 흐르는데 겉잡을 수가 없다.
김 전도사가 나에게 특별히 잘해주어 답례로 한번 교회 가봐야지 하고 참석 하였으나 예배를 마쳤어도 여기서 더 머물고 싶은 마음이 든다. 매일 치료를 받아야 하지만 어떻게 되겠지 …… 교회안에서 대강 자고 새벽 예배 시간에, 낮 예배 시간에 , 저녁 예배시간에 계속 참석하자 먹을것과 마실 음식을 김전도사가 날라와 먹여주었다.
이박삼일 동안 예배에 참석하고 나니 가슴이 시원하고 설명할수 없는 기쁨이 서서히 일어난다.
금요일 ,토요일 이틀을 교회에서 보내고 주일날 부대로 돌아왔으니 사흘동안 치료를 받지 못하였다. 월요일 회진 시간이다. “방소령이 김상병 사흘동안 치료안받고 교회 같었다며 어디 보자 ”하니 담당 군의관이 상처의 거즈를 떼어낸다. “ 어 상처에 딱지가 앉았네 ….. 흠 이럴수가 그러다면 다 낳았다는거 아냐?.........”
“허 신기하네 그렇게 낳지 않던 상처가 교회 부흥회에 같다 오더니 ?........” 옆에 있는 군의관들이 이구동성으로 말한다……..총알이 뚫고 들어가서 구멍이 뚫리고 속에서 부터 살이 차올라야 완쾌가 되는데 몇달이고 살이 차오르지 않다가 남부 교회부흥회에 다녀오는 동안 치료가 된것이다.
나는 이렇한 신기한 체험을 평생 처음으로 갖어보았다.
상이급수 판정
상처가 아물자 더이상 치료 할일이 없어 퇴원할 날이 점점 닦아오는데 우리의 최대 관심사는 과연 나는 상이급수에 해당이 되느냐 하는 문제다. 이곳에 부상 당하여 치료가 끝나면 상처 정도에 따라 정부에서 평생 제공하는 원호대상자에 해당이 되는지 안닌지를 다들 궁금히 여기고있다.
어느날 신체 검사하는 날짜가 잡혀있고 병원 강당에서 치료가 끝난 환자들이 모여있다. 보훈처에서 사람들이 나오고 우리 병원의 의사들이 함께 모여 한사람 한사람 인터뷰하고 그동안 치료한 차트와 X레이 사진을 보며 아픈 부위를 살피고 정부에서 제작한 커다란 책자에 몸의 각부분의 세밀하게 그림이 그려있다. 담당자는 정부에서 제시하는 내용과 치료가 끝난 환자가 정부 지침서에 해당이 되는지를 확인 하는 절차다.
이곳에도 비위가 많이 발생 하기에 앞으로 분쟁을 방지하기 위하여 여러 사람들이 함께 환자 상태와 책자와 의사들의 의견을 종합하여 상이 급수를 정하게 된다. 예를 들어 다리 뒷꿈치가 날라간 한 전우는 우리가 보기에 분명히 핸디켑인데도 해당되지 않는다고 결정을 내렸고 한 전우는 정상인것 같은데 팔에 신경이 끊어져 있는 정도인데 2급의 상이자로 판정을 한다.
신경이 끊어진 환자는 의사가 주사 바늘로 팔 이곳 저곳을 푹푹 찔러도 아무런 요동을 하는지 안하는지를 보며 결정을 한다.
나의 차례다 하의를 벗고 총맞은 자리를 보고 X레이 사진을 보고 이리저리 몸이 어떻게 움직여 지는지 살펴보고 상이 3급의 판정이 나왔다.
한번은 아타까운 일이 발생 하였는데 강원도가 고향인 한 전우는 자기를 원호대상자가 되게 하여달라고 담당 군의관에게 여러차례 사정을 하였으나 거절되자 술을 먹고 의사 집으로 찾아가서 다시 .사정을 하였으나 거절되자 밤에 스스로 목숨을 끊은 슬픈 현장을 보기도 하였다.
추운 겨울에 입원하여 봄이오고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되어 시월이 되자 나는 정든 진해해군 병원을 떠나게 되었다. 지금까지 해병에 입대하여 졸업하는 순간이 된것이다.
감사
.지금까지 내가 살아있는 것에 하나님께 감사
.위험한 상황 인데도 치누크 헬기를 몰고온 조종사와 대원에게 감사
.무거운 나를 둘이서 끌고 헬기에 태워다준 전우 방재윤과 김평택에 감사
.YOU ARE LUCKY 하며 소리친 미국인 집도 의사에게 감사
.옆에서 수발들어준 미해병 장병들에게 감사
.오랫동안 대 소변 받아내고 시중 들어준 해군 장병에게 감사
.상처 치료 하여준 군의관과 간호장교 분들에게 감사
.이곳 저곳 보이지 않는곳에서 도움을 준 병원 직원들에게 감사
.나에게 성경책을 주며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신 김혜원 씨에게 감사
.피아노를 치시며 찬송을 배워준 김규열 전도사에게 감사
.모든 치료를 거저 해주고 후에 원호대 상자로 평생 연금과 각종 지원을 하여 주는 대한민국 정부에 감사.
지금까지 해병에 입대하여 2년여 동안에 있었던 일들을 기억나는 대로 적어 보았읍니다. 힘든 때도 있었지만 지나온 세월을 돌이켜보면 다 화가 복이되어 있음을 감사 드립니다.
김지항 해병 172기 군번 9325468 714-402-2207
jihangkim@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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